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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Periodic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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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uri (뿌리), 1983-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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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uri = The Korean roots, no. 22 (1984 May/June)
(USC DC Other)
Ppuri = The Korean roots, no. 22 (1984 May/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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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구록신청서 .그 01 」‘ -」- A: -r 敎훌훌훌좋、 人R춤 美처*{ 전화번호 1 년치 ...... 20님 2 년 치 ...... 38불 6 년치 ..... · 100불 평생명예회원---- ··200불 口 口 口 口 명 구 수 합 -주|’여。 을 파 J- 환 라 n jl 보 서 、 r캘리」誌는 우리가 미주땅에 와서 사는 삶의 의미와 하는 창조적이고 치성적인 광장입니마. 귀하의 시‘ 소섣 기 둥 갖가지 원고를 기대합니다 펀집방향에 판한 의관도 일 월 198 년 적어보내주십시요. 싶으신 경우에도 변경이나 구독을 중단하시고 니다. 주소 ※ 정기구톡신청서 c그 J\‘ -1.. 01 A: -r 전화번호 美洲훌훌人H춤훌훌t훌훌뚫、 명 서 일 월 년 198 불 불 불 불 m 끽 %찌 꽤 때 원 회 예 치 치 치 명 년 년 년 생 1 2 6 펑。 다 口口 口 보람을 논단, 환영합 구 수 -주 사는 삶의 의미와 창조척이고 지성적인 광장입니다. 귀하의 시, 소설, 갖가지 원고를 기대함니다. 편집방향에 판한 의견도 우리가 미주땅에 와서 「뿌리」듭,E는 하는 기등 밴경이나 구독을 중단하시고 싶으신 경우에도 적어보내주십시요 니다. 소 주 | ※ --------- ----I l -------- -------------- I l ----------- -------------- ---------l I l -- NO POSTAGE NECESSARY IF MAILED IN THE UNITED ST A TES BUSINESS REPLY MAIL FIRST CLASS PERMIT NO. 61850 LOS ANGELES CALIF. p。STAGE WILL BE PAID BY THE KOREAN R。OTS BOX 105, 3171 W. Olympic Blvd. Los Angeles, CA. 잊)()()6 BUSINESS REPLY MAIL FIRST CLASS PERMIT NO. 61850 LOS ANGELES, CA니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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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 Y· MPIC BL VD 월 205호 L.A ‘= .._•••••••••••••••••••••••••••••••••••••••••••••••••••••••••••••••llC • 7 ;、// ‘、/‘ ~~\I,- ‘ ‘J ~I //、~-' . ‘ ,· 、’ /.、 -、’/ ’ ‘?’ ’ \ ‘ /|// ]‘~'. 、;쉰 ' ,、/ -:.·;‘ /、/、 -1) ~',.、 , 、 ~· ~' \1' .. -1 ,, I , .. ,.. , ' | / ‘/ -/‘/, 、 / ’ ‘/ l、 : I~. ’ ‘; / ‘、시. |;잔 / 、/ I ;,숫 “~· ~ /‘ / /“ ‘ 、‘ l、/ 、 -- - ‘;‘< 、 /I. I 、 ‘ '.__, ~ ‘/‘/ 것이기 해 ?· 、---、 남 • 녀 생 식 기 능 ·;,:; ’ ‘ 、 허약에서 오 j덴 - "'·-I 아기 들, 심부 ~.、--,~ 신장 자굳 펀~j 통증이 멈춰 약.깐 I ,.. I: .7<l-?흥 ‘ι;c ”」’/ζl 、 ---、 ‘; / ‘ 효험 ol 깎;! 아픈 사 5 、;i 、、、 이밖에도 't'관 、← , .. 사슴의 ,기’ζ 강정작용을 한마고 합니다. 잔잔 ~,,,, .... 、,. l、 I I~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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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잘 오셨읍니막 고심끝에 붓을 들었읍니다. 실은 그동안 기회를 벼르고 있었읍니다. 그러던 차에 서울지방의 수재민을돕기 위해 북 에서 쿠호물자를 보내겠다고 제의하나까 남에서도 선듯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얼마냐 기했는지 몰라요. 혼자서 감격의 눈물까지 흘렸읍 나마. 붓을 들어 하고싶은 이야기를 두분께 적었읍니다 . • • . 6. 25동란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지요- 민족화해의 우체적인 행 동이었마는 점에서 크게 평가하는 이들이 많더군요. 녕처음에는 다소 망서려지더군요. 내가 천 두환 · 김 일성 두 사람 에게 펀지를 쓴마는 것이 좀 쑥스럽게 생각되어 한동안 고심도 했읍 니마 . 다 아는대로 냐는 평생동얀 북쪽을 인정하고픈 마음을 가잔적 이 없었어요 - 더쿠나 광주를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있는 내가 천두환 씨를 상대한마는것이 마음에 여간거북스럽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 벤 기회가 하늘이 주신 기회로 여겨 민족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겸 허한 마읍으로 붓을 들었지요. 전 대통령이마, 김 주석이다 말하기 가 어찌냐 거북했는지 몰라요. 그러나 용기를 내고 말았읍니다. - 10여년전 r 7 . 4공동성명 j때에도 온 민족이 엘마냐 강격했는 지, 생각만 해도 그 격정이 가슴을 치고 있어요. 그러냐한반도를둘 러싼 국제정세가 쉽사리 풀리지 않으니 문제아니겠읍니까 ? G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이 단결만 하연 웬만한 일은 거 뜬히 해낼 수 있다고 봅니다. 외세는 내서l라는 발판이 있을 혜 힘을 쓰기 마련입니다. 해방직후나 6·25사변을 두고 보더라도 만일 그때 우리 민족이 똘똘 뭉쳐 있었더라면 마 -소 강대국이 제멋대로하지는 13 14 뭇했을 겁니다. 우리가 좌우로 갈라져 있었던 탓으로 강대국의 간성 을 배제하지 뭇한 채 말려들고 말았지요. 그러고 이제는 국제정세도 많이 달라지고 있지 않습니까? 동서독 을 보세요. 패천국가로 주위로부터 천범취급을 당하고 있는데도 서 로 교역을 하고 차판을 주면서 도와가고 왕래도 하며 이주도 시켜주 고 있어요. 이 신문보도를 보세요. 소련의 압력을 받아 연기는했지 만 호네커 동독수상이 내년에는 기여코 서독을 방문한다고 했어요. 독일사람들은 장한 민족입니다. -지난 72 년 7·4공동성명이 발표되었을 혜 독일사람들은 우리 민족을 위대하마고 하면서 부러워했어요. @우리민족은 5천년이라는 긴 세월동얀 온갖 역경을 겪으면서도 션조들의 말과 문화를 지키면서 함께 살아왔읍니마. 그러던 것이 위 정자들이 민중의 희망과 이익을 둥지고 냐라를 망치게 되니까 그틈 을 타고 외세들이 들어와 우려를 이리저리 갈라놓고 패싸움을 시켜 왔읍니다. 분단도 따지고 보면 일본 식민주의가 남긴 유산이예요. 해방후 일제의 잔재를 말끔히 씻었어야 했는데 그만 지회를 놓치고 말았어요. 우리끼리 서로 역적시해서는 얀되지요. 서로 감싸고 아 껴야 합니다. 그래야 한 민족으로 살아남을 수 있거든요 , 자기생각 과 마르고 비위에 얀 맞는마해서 원수처럼 대하는 버릇부터 제말 고 쳐 나가야 해요. -우리 만족이 겪고 있는 여러가지 어려운 현실에서 가장 가슴아 프게 여기시는 일은 무엇언가요? G역시 이산가족의 형펀입나다. 냐도 이산가족이라 할 수 있어요. 파를 냐눈 사람들을 북녘땅( 황해도 재령 ) 에 두고도 가보지 뭇하니 까 그렇고 선산을 찾아 성묘를 뭇하니까 그렇고 고향산천 찾아가지 뭇하니까 그렇고. 아니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산가족 아난 사람이 얼 마냐 핍니까? 제 조국의 산야를 마음놓고 훨훨 마나지 뭇하는 사람 들은말하자면 냐그네요 나라를 잃은 유랑민이라 말할 수 있지요. 선 조들이 그토록 아끼 며 지 키 던 금수강산 3 천리를 두동강이 로 갈라두 고 있는 자체가 민족에 죄를 짓는 일입니다. 더쿠나 1 천만 이산가 족의 지내온 형펀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터지지요. ( 눈물을 흘러며 ) 하루를 3년처럼 안타깎게 지내던 그들이 약 40년을 견디어 왔으나 --- ( 말을 맺지 뭇한다.) • • -이 순간에 가장 하고 싶으신 일이 무엇인지요? G원수의 38션을 통쾌하게 짓밟고 고향땅을 찾아가는 일이지요 내 냐이 84세로서 객판적 정세가 허락되면 조국땅에 되돌아가 묻히 고 싶습니다. 지난해에 이곳을 왔던 천 연세대학교 김 동걸교수 ( 현 재는 복직되었음) 에게 흙 한줌을 보내달라고 부탁렀더니 보내왔더 군요. 이겁니다. 머리 맡에 두고 하루 몇벤씩이고 그 냄새를 맡으며 향수를 달랩니다. 처음 받았을 혜 억씬 커스를 하며 한참동안 울었 지요. 미국에 건너온 지도 13년이 되어가는 군요. 제냐라 땅을뭇밟 게 하니, 내가 왜 r 반한인사 J 입니까? ( 김옹은 제헌국회의원,반민 특위부위원창을 역임했으며 그 뒤에도 세벤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1960년에는 서울시장에 당선됨 )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지키 자는 일을 [ 반한 J 이라고 몰아부치고 있으나------ 그러나 눈감기천 에 초국의 완천자주독렵과 평화통일만 볼 수 있마면 여한이 없겠어 요.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내년 봄, 날씨가 풀리면 일단 서울에 돌아가려고 합니다. 가서 민족화해운동을 벌리렵니다. 이곳 저곳을 마니면서 말입니다. 그러고 이 펀지의 회답을 가마렸마가 38선을 짓밟고 넘어서 북도 가 볼 작 정입니막 한가지 분명히 해 둘 것은 민족화해운동, 통일운동을 하 더라도 한쪽에 치우치면 안된마는 점입니막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 자 해 놓고 한쪽을 두둔하거냐 션천하는 일은 진정한 의미의 화해운 동이 아니지요. 서로 틀리고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민족이 하나되고 또 살아남기 위해서는 얼싸안을 줄 알아야 합니다. 정치를 넘어서는 민족에 대한 철대적안 사랑이 기본이 되켜야 합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막 효l절 · 신속 · 정획 구 본훈 겨l근l회사 • (213) 384-16()8 8588 2404 Wilshire Blvd” Suite ‘70s Los Angeles, CA 90010 15 16 남북정부수노l에게 드러는 진얹 진언으l 차례 머리 말 첫 째 남북간의 수재 쿠호물자 수수에 대 한 감사의 말씀 둘 째 남북분계선 ( 38선 ) 의 철폐를 만천하에 선포하고 이를국제 연합에 통고할 일 세 째 이 산가족 및 친지 들의 남북분계 선을 통한 상호방문에 관한일 네 해 이산가족 및 일반동포간의 통신교환과 자유왕래, 더 냐아가 서 는 남북교역 , 학술 · 문화 • 예 술 · 언론 · 체 육등 각 분야의 교류에 판한 일 마섯째 88 올럼픽에 참가할 남북단일팀 구성에 관한 일 여섯째 민족화해와 백년대계를 위히-여 정부요인 및 정계 · 종교계 · 학계 · 언론계 지도층과 일반국민이 철대 협력할 일 자 료 ; 최근 동서독간의 접촉에 판한 일부 신문보도 머리 말 실은 벌써부터 우견의 몇말씀을 드러려 하였으나 상호간에 불신감 과 적대감이 넙치는 듯 하여 기회를 엿보고 오던 차에 남한의 대수해 를 겪은 둬 민족적 애정의 차원에서 남북간에 수재구호물자를 주고 받는 것을 보고 대화의 좋은 기회가 온듯 하여 변변치 뭇한 말씀을 몇마다 드러오니 들어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읍니다. 내 냐이 현재 84세로서, 이역땅에서 눈을 언제 감게 될지 모르는 이해어l 우선 냐의 심경부터 외람된 말씀을 드러려고 합니다. 마국에 건너온 지 13년이 가까와집나마마는 자나깨나 희망하는 바는 객판적 정세가 허락된마면 조국땅에 되돌아가서 묻히는 일입니 마. 고국의 흙냄새가 하도 그러워 지난해에 이곳을 다녀간 김 동걸 박사 ( 연세 대 학교 교수 ) 에 게 부탁하여 한줌의 흙을 쿠해 와서 님 l-1..-l- ∼ p ..A • 으로 그 냄새를 맡으며 조국의 자주독립과 평화통일을 바라보며 이른 새벽마마 머리숙여 기원해오고 있읍니다. 서녘하늘을 본래 냐는 막내아들 준형군이 마국에서 자기 힘으로 대학과 대학 원을 마치고 졸업식에 와 달라는 간청이 있어서 정부에 여권을 신청 하였던 바 얼마동얀 까닭없이 손에 쥐고 내주지 않아 호통을치고항 의를 거듭했더나 ( 지면판계상 자세한 사정은 생략함)이민여권을 내 주겠마고 하녔읍니마. 내가 그것을 끝내 거절하니까 나중에는 마지 뭇해 일반여권을 내주었읍니다. 미 국에 와서 도 외국인으로서 체 류기 간연장을 두어 벤 한끝에 추방 하겠다고 하기에 하는 수 없이 영주권을 받았지만 단 한번도 남의나 라에 폐를 끼치는 일을 한적은 없고 13년가까운 긴 세월에 시민권 을 받지 않은 채 조국민주회복남가주국민회의를 창설하여 조국의 민 주화와 자주통일을 위해 미력이냐마 헌신해 왔읍나마. 10·26직후 하도 조국이 그러워 귀국을 신청하였더니 최규하정부 는 냐를 “ 반한인사 ”라 하여 입국사증을 내주지 않고 말았읍니다. 아시 마시피 냐는 1901 년 6월 9일 ( 음력 ) 에 대한인으로 고국땅에 서 태어났고 줄곧 한민족의 일원으로 부끄러움없이 떳떳이 살아왔으 며 외세의 침 략 · 강점 • 간섭이 조국땅에서 사라지도록 사력을 마하 며 살아오는 터입니다. 최 근에 와서 수재 쿠호물자 수수를 계 기 삼아 이 산가족찾기 와 남북 경제교류를 추진할 모임을 열고 있마는 소식이 들려와 몽매에도 그 러던 통일의 날이 마가오고 있음을 이 늙은것의 가슴으로도 느껄수 있어 한없이 기뻐하는 바입니막 우리 민족은 유쿠한 역사를 이어오는 동얀 일판해서 자주독렵을 지켜 한 나라로 살아왔으며, 외세의 침략과 지배로 일시 정복· 분단 되는 경우에도 한 냐라 · 한 민족의 이상을 한시도 포기한 적이 없었 읍니다. 그러가에 몇차례의 세계대천 혜에도 강대제국은 우러나라 의 자주독럽과 평화를 마짐할 수 밖에 없었고 1945 년의 분단 이후 에도 판계국가들이나 국제기쿠에서는 기회있을 혜마마 한반도의 재 통일과 평화를 천명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수재민쿠호사엽을 계기로 하여 시작된 남북간의 대화가 지난 7·4 공동성명의 정신과 원칙 밑에서 어떠한 일로와 장애에도 불쿠하고 결설을 맺어 한 민족이 서로 화해하고 조국이 마침내 하냐가 되는 가적파도 같은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손모아 앙축하는 바입니다. 17 18 첫째 남북간으| 수재구호물자 수수에 대한 감사의 말씀 남의 동포들이 수재를 당하는 것을 돕고자 북이 넉넉지 뭇한 살림 에도 불쿠하고 막대하고 소중한 물자를 보내고, 또 이를 남에서도받 아들이며 짧은 시간안에 질서있게 나누어 주는 것을 보고 지극히 감 격하였읍니다. 이 일은 남북적섭자사 판계인사 및 위정자들이 애족적 내지 인도 적 견지에서 결행한 장거임은 물론이요, 하늘에 계시는 수많은 우리 애국선열 영령들의 권고하심과 복주시기를 항상 즐겨하시는 조물주 의 축복에 힘 입은바 컸으리라고 믿습니마. 이번 일이야말로 외세에 의하여 그어진 38선이라는 마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조국의 완천자 주독립과 평화통일을 이룩하는데 초석이 되는 장엄한 민족사적 작업 으로 평가되오며, 펄시 천계의 징조안 듯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리 하오니 이번에 발휘하신 민족화해의 정신을 더욱 고양하시어 초국통 일로 결실해 주시기를 두손모아 법니다. 경천에 “주는 자가 받는 자보마 복이 있다 ”고 하였읍니다. 금후 에는 남북의 정부냐 우리 국민 사이어l 먼저 주기를 경쟁하는 분위기 가 조성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남북분계선 (38선)으l 철폐를 만천하에 선포하고 01률 국제연합에 통고할 일 이 원수의 38선 장벽은 처음부터 우리 민족 모두가 결사 반대한 바였으냐 강약의 부득으로 미 · 소 두나라가 자기네 국가이익에 따라 기어코 고정시켰으며 설상가상으로 6·25사변으로 동족간에 살륙의 참변까지 겪 고 보니 6 천만 민족의 쓰라럼 파 참상은 물론이 요 그가 운데서도 l천만이 넘는 이산가족이 생 .겨냐 부부 자녀 사이에생이별 을 하게되고 생사조차 모른 채 40년 가까운 긴 세월을 헤어져 살 고 있음은 역대 위정자는 말할 것도 없고 온 민족, 아니 민족의 한 사람인 나도 그 책임을 면치 뭇하고 죄송히 여겨 고개를 들지 뭇하 게 되었읍니다. - 이산가족재결합은 한순간도 늦출수 없는 일이므로 이번이 하늘이· 주신 천재일우의 가회로 알고 호기물실의 결심으로 두분께서 냐라 • 사랑 · 겨레사랑의 신념에 입 각하여 비상한 지도력을 발휘하시어 38 션의 무효를 만천하에 선포하고 이를 즉각 국제연합에 통고하신다면 6천만 우리 겨레는 물론이요 각 냐라의 자주와 독립을 사랑하는 온 세계인류가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냐서러라고 봅니다. 우리는 독일처럼 패천국으로서 천쟁에 승리를 거둔 냐라들의 정계 와 처벌을 받아야 할 나라도 결코 아니며, 저들이 과거의 잘뭇을 뉘 우치는 뜻에서 한 민족이 완전하고도 참된 해방파 독립을 되찾도록 도와 냐섰어야 썼음에도 불쿠하고 도리켜 남의 땅에 38션을긋고천 쟁까지 일으켜 가면서 그것을 이토록 오랫동얀 고수해오고 있마는 것은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읍니다. 만일 미 · 소 두나라가 우리를 반대하고 나션다면 이를 일축한둬온 안류에 호소하여 싸워 나간마연 기필코 성공하리라고 믿습니마. 우리 민족이 하냐로 단결만 한마면 이제는 지난날처럼 식민지 내지 약육 강식의 만능시대가 아니므로 싸움의 승리는 우리 쪽에 있을것이 확 실합니다. 세째 이산가족 및 친지들의 남북분계선을 통한 상호방문에 관한 일 l 천만이 넘는 이산가족 가운데는 20세천후의 젊은 부부들이 서 로 천쟁의 경험이 없던 탓으로 1 주일, 걸어서 한달이면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짐작하고 작별한 것이 이제는 60을 바라보게 된 이들 이 대부분이며, 부자와 모녀 사이에 그러고 형제 자매 사이에 생사 조차 모른 채 근 40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악몽과 비애속에 살아가 야 하겠금 되었으니 이보마 더 얀타깝고 애처로운 일이 또 어디 있겠 읍니까? 우러 나라는 남북이 모두 같으로는 금수강산이요 선잔국으로 일어 서는 희망에 가득차 있는듯해 보이지만 속으로 가만히 들여 마 보면 몇백만의 젊은 생과부와 생홀아비, 그러고 이에 따른 수많은고아들 의 한과 비통으로 가득찬, 폭풍과도 같은 원한이 휘몰아치는 생지옥 임이 분명합니마. 이러한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자화상을 두분께서 는 굽어 살펴시어 일각이라도 속히 서둘러서 이산가족문제부터 속결 해 주설 것을 당부하면서 결실을 촉쿠합니다. 19 20 이제와서 자포자기외 한탄에 빠져 있거나 외세배격의 쿠호를 외치 는데만 허송세월하지 말고 서로 서로가 공동책임의식을 지나고 동조 동근의 민족적 애정을 발휘한닥면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풀리리라 믿 습니마. 거기마 두분께서 대장부마운 기개와 민족적 양심에 따라 뛰 어난 지도력을 발휘하신마면 우리민족화해의 소원은 기펄코 성취될 것입니다. 이미 우리 민족은 7·4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서울과 평양을 광래하 면서 문제해결을 마짐한 바 있고 또 최근의 국제정세는 한층 유리해 져가고 있는듯 합니마. 첫째 , 동서 유우렵 사이에 조성된 화해분위기를 배경삼아 동서독 사이에는 자유내왕을 비롯하여 3천 3백명이 넘는 동독언들이 서독 에 이주한 일, 그러고 서독에서 동독에 수억불에 달하는 차판을 해 준 일, 상호교역이 활발해져가고 있는 일, 그러고 내년에는 기어코 호너l커 동독수상이 서독을 방문할 것이 예상되고 있는 일 등. 둘째 , 일본과 중공사이에 협상이 이루어져서 중공에 사는 한 · 중 일언들이 일본에 사는 그들의 가족을 수차례에 걸쳐 방문하고 있는 ol '2.. 세째, 남한과 중공 사이어l 아무렌 외교판계가 없음에도 불쿠하고 언도적 차원에서 상호 가족방문 허용을 제안하고 있는 일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 더쿠나 같은 파를 냐누고 5천년동안 함께 살아온 우리가 남아 그어놓은 분계선을 어리석게 고수해 가면서 가 족끼리 만냐는 것 조차 역적시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수 없 읍니다. “ 콩과 콩껍질이 한 뿌리에서 낳았겠건만 서로 물고 뜯음은 웬 일안고, 콩을 솥에 넣고 콩껍질을 태우나 콩은 솥안에서 슬퍼 울 기만 한마 ”는 옛말이 있는데, 우리의 사정이 이와 다름이 없을 것 입 니 마. 이 같은 우리 민족의 현살을 하루속히 타개 함이 마땅하지 않 겠읍니까? 네째 이산가족 및 일반동포간의 통신교환 및 자유왕래, 더 나아가서는 남북교역, 학술 • 문화 · 예술 • 언론 · 체육 등 각 분야의 교류에 관한 일 이산가족사이의 안부서신 교환을 비롯하여 고향 · 친지찾기, 천문 • 분야으 l 7.~ i:_찾지, 금강산관광을 비옷한 자연 및 사석 순례찰 돕한 I닌족푼화교육의 진흥과 학숨 • 예숭 · 언론 · 체육 등 각 분야의 인사 접 촉을 통한 민족일체 감의 진착을 꾀 함은 물론 담력-간의 교역 개 섣 · 증진으로 상부상조의 ‘ 도를 높혀 웅극적으로는 민족의 실리를 찾아서 가난을 추방하고 자주 · 벤영 · 발천하는 복된 냐라를 세 우도록 경 제 의 틀을 잡아냐가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냐도 따지 고 보면 이 산가족의 한사람업 니 다. 나의 초부모 · 숙모님 은 모두 팽양태샌이고 냐는 황해도 재령 태생으로 남북본계션을 밟 고 넘어서 고향땅을 찾아 성묘도 하고 친지도 만날 생각으로 있으며 너무 늦기천에 이를 결행할 작정입니다. , 다섯째 88흘림픽에 참가활 납북단일팀 구성에 판한 일 냥북은 서로 찰웃이 있더라도 펴는 물보마 진한 까닭에 88 올림픽 대회가 성공하도록 도와냐가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머 지 난벤 멕κ11 ' 훈버모임에서 모든 회월국위 참가가 결의된 이 마당에 싹 북윤 앞창서서 모둔 냐랴의 참가를 권유할 일이요 남은 남북단일 탬풀 주성하고 탤 얼푸 청기률 평양과 그밖의 북녘 땅에서열도록 제 의해야 할 것업니다. 그리하여 백의민족의 기개와 용맹올 빨치고 건 투끝에 많은 종목에서 우승을 거두어 “하냐의 코리。l-(~KORFA)” 갓발률 했한도와 j북녘과 남녘 하늘 높이 휘날리게 된다면 6천만 우 려 번촉의 위상파 긍지 7}- 솟을 것이요, 온 세계언류의 격찬까지 발 게훨 것율 확신합니다. 그러고 88윷렵획율 계기로 민족화해의 기운은 더욱 무르익게 될 것이요 우리 민쭉의 꿈이며 소현언 완천자주독랩과 통얼에 박차를 가하게 필 것이 훌렴없윷니다. 이 빼에는 단군성초와 수많은애국선 옐률 그리고 창죠주체써도 우리 6천만 민족의 역사척 행진올 축복 하실 것이 아닙녀까? 이것은 어디까지냐 냐의 우켠에 지냐지 않사오며, 마만 88올렴픽 이 민족불화와 수치의 기회가 되지 않고 세계에 우리 민족,의 긍지와 아량을 보이는 기화가 되고 민족화해의 천기가 되기률 바라는 충심 의 한 표현얼 따름업니마. 21 22 여섯째 민족화해와 백년태계롤 위하여 정부요인 및 정계 • 종교계 · 학계 • 언론계 지도층과 일반국민이 절대협 력할 일 옛 어른들은 “가화만사성 ”이라 하였읍나마. 작은 가정 일도 가 족이 모두 화목해야 모든 일이 성취될 수 있마고 하였거늘 하물며 한 냐라의 일이야 말해서 무엇하겠읍니까? 그런데 현실인즉 분단으로 인한 갖가지 모순과 역경으로 우리 민족은 모두가 한에 맺힌 나머지 좌절감과 절망어l 싸여 있어 내일에 대한 희망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 읍니다. 그런데 천만다행히도 수재민쿠호물자 수수를 계기로 동천의 여명을 맞은 듯한 캄격을 갖게 되었으나 이런 혜를 놓치지 않기 위 해서는 마소 불평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극기와 덕화로써 위로하고이 해해 주어야 하겠읍니다. 몇해천에 소수의 선견적안. 해외기독자들이 비엔나와 헬싱키에서 북의 대표들과 만나 민족화해의 대화를 나눈 일이 있었읍니다. 마른 무엇보마도 우리가 같은 뿌리를 가진 민족이라는 사실을 기회있을때 마마 확인하는 작업이 바람직합니마. 우리사이에 마른 점보다 같은 점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에 솔직하고 정직할 혜 민족화해의 걸이 트 일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은 이 뭇난 늙은것이 10여개성상 해외에 냐와 살면서 평 소에 생 각해 오던 것으로 중언부언하여 죄 송하기 짝이 없으나 판 용하사 받아주시 오며 겸 하여 기 쁜소식 주시 옵기 바라면서 내 내 두분 의 평강하심을 간절히 기원하는 바입니마 . • 1984년 11월 22일 추수감사절에 마국 나성 일우에서 2_1 Aι도 그 HI-I I그 C> L- L- -·· 주소 : 2607 34 th Street San ta Monica California 90405 U S A 천화: (213) 450-1658 ,. • Fi 닙 든 -「 口 23 어느 민중신학자의 I::그。내 TT t:::j 최근 교황 존 폴 2세는 남 미으l 해방신학이 말크스주으l 적 경향을 띠우면서 사회구조 의 변혁을 겨눈 혁명의 무기 를 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 국에서 싹튼 만뚱신학도 그으l 공격의 대상이 도|는가- 민족사 에 있어서 가장 암담하고 처 절한 장(章 ) 으로 기억되는 70 년대, 유신체제와 불균형 으l 산업화 강행정책으로 철저하 게 억눌리고 소외되었던 한국 민줄을 대변하면서 탄생하였던 민좋신학은 이 혁명의 시대어l 무엇을 제시하고 있는가- 민중 신학의 기수 고 서 남동교수의 사상과 인간됩에서, 그러고 그 와 함께 민중신학형성을 위해 일했던 문 동환 · 한 완상교수 으l 증언 을 통해 민좋신학의 핵 심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24 口 특집 / 민중과 새로운 신학 - 어느 민중신학자의 유업 도 () 부”』 헬라 사람들은 추상적안 사고와 논리적안 변론을 좋아한다. 그래서 쏘크라테스도 독약을 마신둬.죽음이 발끝에서 심장을 향하여 서서히 올라오고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과 더불어 진리를 토론히-고 있었마. 그는 진리란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에서 발견된마고 생 각했다. 그렌데 허브라인들은 역사적안 사건을 기억하는 것을 소중하게 믿 었다. 진리란 거룩하신 하느님의 뜻에 있는 것이요, 그 뜻은 사람의 두뇌로 생각하는 논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사건 안에 있마고 믿었다. 왜 냐하면 역사의 주가 되시는 하느넘은 역사안에 내재하시 고 그 역사의 발천 속에 그의 발자취를 남기신마는 것이마.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에 보면, 모세는 자기가 애급에서 이끌 고 나온 무러들에게 저들이 애급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하느념이 어떻게 구출하셨는지, 그러고 어떻게 저들이 하느넘앞에서 계약관계 를 맺었는지를 언제냐 기억하고 또 이를 자손만대에 거듭 거듭 들려 주라고 가르쳤다. 집에서 쉴 배나 걸을 갈때나 자리에 들었을 배나 일어날 째냐 항상 말해주라는 것이었다. 이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으라는 것이었마. 문설주 와 대문에 써 붙이라고 했마. 。 l 출애급 사건과 시내산 앞에서 계약 을 맺은 사건에서 하느넘이 그의 뜻을 명확히 드러내셨마고 그들은 믿은 것이다. 누가복음 2장 41 절 이하에는 마리아가 예수념의 삶을 유심히 쉰 • --- • 목하여 보고 이것을 마음에 간직했마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가 하느 념의 영에 의한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얀 마리아는 그를 통해서 하 느념이 고난받는 그의 백성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하싣 것인지 유심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 어렸었을 때 부터의 그의 심상치 않은 행동 들을 마음에 깊이 새겨둘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그렇다. 우리들의 삶의 내용이란 무엇을 머리로 깨닫느냐에 뭇지 않게 삶 속색서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것을 기억하고 있느냐 에 크게 달러꺼l 펀마. 그러고 우리의 깨달음이라는 것도 우리의 삶 의 경험에 초대밭고 있다. 우리의 삶의 경험이 한스러운 것, 슬픈것 으로만 점철되어 있다면 우리 삶의 천망은 비판적안 것이 되고 그삶 은 날로 시들켜 갈 것이다. 반면에 우리의 기억들이 밝고 즐거운 것 으로 가득 차 있마면 오늘의 삶이 밝고 신냐는 것이 될 것이요, 그의 미래 천망도 낙관적으로 된다. 그러므로 『삶의 기쁜 추억들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니---』하는 말을 우리는 감히 할 수 있마. 그렇마면 삶의 기쁜 추억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언 가? 어디에서 우리는 그런 축복받은 사람들을 찾을 수 있는가? 미 국에서 사는 생활이 얀정되고 풍요한 삶일까? 만일 그런 것이라면 한국과 같은데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소망도 없을 것이고 따라 서 하느넘은 사랑도 정의도 모르시는 분이라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냐 마행히도 삶이란 완천히 밝은 것도 완천허 어두운 것도 아 니마.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삶에도 언제나 불행의 그럼자가 깃들어 있고, 반대로 아무리 비참하게 보이는 삶에도 기쁨과 보람의 씨앗이 있는 법이다. 말하자연 삶이란 빛과 어두움, 기쁨과 슬픔의 혼합체 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삶을 천망하는 눈이막 그 소망의 자리 이마. 우리가 선 소망의 자리에 따라 우리의 삶이 밝은 것으로 보이 기도 하고 어두운 것으로 보이기도 한막 우리의 눈와 병암도에 따 라 우리의 삶이 의미에 찬 것이 될 수도 있고 무의미한 것이 될수도 있다. 그러고 이와같은 자리 혹은 눈이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천기 를 01룩하는 획기적언 사건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출애급 사건이 그렌 계 기였다. 그리 스도인들에게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그렌 계기를 마련하여 준다. 그와 같은 계기를 통해서 저희들의 보는 세계는 완천히 마른 것이펀 막 따라서 저들은 언제나 그계기를 기억하고 그 자리에 서서 역사 25 26 를 바라보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 서 남동 목사야말로 삶의 획 기 적 언 사건으로 말마 암아 삶을 완천히 새롭게 볼 뿐만 아니라 새롭게 사신 분이요, 또 그의 삶이 많은 사 람들에게 획기적인 사건이 된 가장 좋은 예의 하나이마. 그리고 이 사실을 밝히는 것이 그를 바르게 이해하는 일이요, 바르게 기억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서남동 목사는 철저히 이성적언 분이었다. 감정에 밀려서 사물을 결정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는 사물을 사리와 이치에 따라 결정 한 뒤 남아 무어라고 하든지 담담한 심정으로 그 걸을 걸어가신 분 이다. 이런 삶의 자세 때문에 그는 존경과 신임도 받았지만 많은 사 람들에게 오해와 물의를 일으컨 일도 종종 있었다. 그가 폴 · 털릭히 냐 샤르템을 좋아한 것도 그 혜문이마. 틸릭히는 가장 논리적인 신 학자요, 샤르템은 과학자로서 신학을 논하였막 그가 민중신학으로 전향하기 직천 생태학에 많은 관심을 가졌었는데, 그것도 과학적언 사증을 통한 언류의 위기를 셜명하는 것이었기 혜문이마. 한동안 그 는 그의 주변에서 폼부럽치는 정의운동에 대해서 거의 외면을 했었 다. 그러던 그가 1974년 경부터 완천히 달라졌다. 서울 종로 5가의 목요 기 도회 에 B바지 지 않고 나오고, 노동운동에 도 쫓아 마나 면서 거 기서 일하는 후배들을 거들기 시작했다. 그러 마가 1976 년 소위『 명 동사건』으로 감옥생활을 하시게 되면서부터 그는 서쿠신학은 완천 히 옆으로 밀쳐놓고 민중신학에 천념하셨다. 무엇이 이렌 극적언 변화를 그에게 초래했던 것일까? 1973년 청이라고 생각된마. 그는 아프리차에서 열런 세계교회협 의회가 주판하는 신 ·강과 직제 협의회에 한국교계대표로 참석한 일이 있었다. 그 회의를 종결짓는 예배에서 조지 에버 (George Webber) 라는 분이 시인 김지하의 신학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짜고 그 젤정에 서 김지하의 『금관의 예수』를 불렀다. 이렇게 세계 교계가 김지하 의 신학과 사상을 높이 평가해서 예배.에까지 인용하였는데 서교수자 신은 그 시안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었마는 것이다. 깊은 수치 감과 충격을 받은 서교수는 돌아오는 걸에 동경에 들려 김지하의 작 품을 사서 호텔방에서 자세히 읽었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완전 한 삶의 천환을 경험하게 되었다. 한국의 시안이 고난의 용팡로를 통하여 고매한 사상을 빚어내고 있는데 자기는 멀리 바마 건너에서 、 • • 만 바라보고 있었마는 것을 깊이 참회했던 것이다. 그후 그는 『삼일쿠국선언사건』으로 수감되었다. 그는 남들이 혐 오하는 감옥에서 한국 역사를 새삼스럽게 공부댔다. 특히 사회의 밑 바닥에서 고생하는 민중들이 밝은 내일을 바라면서 투쟁해온 발자취 를 공부했마. 마리아가 예수의 삶을 유심히 살펴 보연서 거 기에서 하느넘의 손끝을 찾아보려 하였듯이. 결국 그는 거기에서 살아계시 는 역사의 주를 발견한 것이다. 그의 높고 아름마운 사랑과 정의의 뜻을 땅위에서 야룩하려고 오늘도 신음하는 민중 속에서 일하시는 하느넘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민중신학자로 탄생하였 다. 그가 민중신학자로서 우리에게 남겨준 업적은 마음과 같은 것이라 고 생각한다. 첫째로 그는 출애급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서 하느넘이 역사 안에서 어떻게 일하시느냐 하는 모습의 천거를 보았다. 출애급의 사 건에서 하느넘은 역사안에서 억눌러고 속박받는 자들을 선택하셔서 그들에게 새로운 내일의 주인공이 되게 하시 기 위하여 일하신마는 것, 그러고 예수념의 죽음과 부활에서 하느념이 새 내일은각성한민 중들의 자기 희생을 통하여 이룩하신마는 것을 그는 확신하게 되었 다. 모세의 출애급은 성공한 역사변혁의 야야기언데 반해서 예수의 이야기는 일단 실패한듯이 보이는 사건을 통하여 역사를 재창조하신 이야기로서 계속적인 혁명을 보여주는 전거라고 그는 주장하게 되었 다. 그러고 그는 통일신라 이후의 만중의 투쟁사를 더듬어서 하느님이 어떻게 민중을 통하여 역사의 발천을 추진해 오셨는가를 찾아 보았 다. 그러는 가운데 타계적언 불교도 민중 사이에서는 현실개변의 종 교로 발천함을 보았다. 민중투쟁의 토양에서 생겨난 안내천의 종교 안 동학의 의마도 새롭게 발견하였다. 민중 투쟁의 펴비런내나는 도 정에서 빚어진 민중문화 가운데 그들의 갈망, 그들의 예지, 그들의 힘이 새겨져 있음을 그는 발견하였다. 그러고 김지하의 사상에서 민 중신학의 개화를 보았다. 그러고 이 모든 씨름에서 그는 만중의 한을 판심의 초점으로 삼았 다. 민중은 쌓인 한을 푸는데 삶의 목표로 삼고 있음을 알게 된 그 는 교회의 사명도 그들의 한을 풀어주는데 있다고 설파하였다- 그는 하느넘의 역사를 성서 나 한국민중사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의 27 28 역사상 이단이라고 쫓겨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도 발견하였다. 다시 말하면 교회사의 주류를 이루었던 천통파 속에서가 아니라 이 힘을 가진 정통파로부터 박해를 받고 소외당해온 무리들의 투쟁속에 하느 넘의 진리가 계시되어 있마고 그는 믿었다. 천체 적으로 보아 민중신학은, 사랑과 정의의 하느넘은 스스로의해 방과 역사의 재창죠를 위하여 폼부럼치는 민중들 속에서 일하셨고그 의 진리를 계시하셨마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고 그들을 새 역사의 주 인으로 삼으신마는 판점 이 다. ‘ 이와 같은 사실은 성서는 물론 한국의 민중사냐 교회역사를 살펴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어느 혜 어느 곳에 있는 민중이든 그들의 자유 와 정의를 위한 투쟁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아도 똑같이 받견할 수있 마. 이렇게 생각할 혜 민중신학은 정의의 하느님을 성서에서 해방시킨 것도 된다. 마시 말해서 과거에는 사랑과 정의의 하느넘은 성서의민 중, 곧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만 역사하신 것이라고 하여 성서안에 국한시켰던 것인데, 민중신학의 판점에서 볼 혜 언류사의 어느 국면 에서든지 민중이 몸부림치는 데서는 하느님을 발견하게 되기 배문이 다. 이렇게 생각할 혜 서남동교수를 선봉장군으로 해서 발천되고 있는 한국의 민중신학 운동은 그 자체가 기억되어야 할 하나의 사건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성서라고 하는 책에서 해방시 키는 사건이요, 그 하느념을 모든 인류의 민중사에서 재발견하는 사 건이기 혜문이마. 이것은 동시에 이때까지 무시당해왔던 민중들의 01야기가 하느넙의 진리를 발견하는 경천이 되게한 사건이요,천대와 소외속에서 한에 맺혀 울부짖던 민중이 자유와 정의의 하느넘이라는 맥락속에서 자기를 되찾게된 사건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앞으로 우리 자손 만대에 천하고 깨우쳐 기억시켜야 할 사건이 아닐 수 없 다. 고 서 남동교수는 한참 신학적으로 ·공헌해 야 할 나이에 어처쿠니 없 이 돌아가셨마. 민중신학을 제창한지 불과 6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돌아가셨마. 아깡기 그지 없다. 그러냐 사람의 생이란 걸게 살아야 보람있고 만대에 기억되는 것 은 아니막 예수넘은 불과 30세 남짓 살마가 돌아가셨다. 그의 공 생애란 2년내외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그의 삶은인류사에 영· • • 원히 기억되는 삶이다. 서교수는 민중신학에 개종한지 얼마되지 않 았지만 이 기억해야 하는 중대한 운동을 출발시키신 분으로, 그 운 동에 중요한 초석을 놓으신 분으로 걸이 걸이 기억되어야 하고 또기 억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사이에서 서교수를 통하여 이런 신기원을 이룩해 주신 하느넘께 감사하면서 서교수의 이야기와 그가발동을걸 은 민중들의 이야기를 만천하에 천할 것을 마짐하자. 그래서 오고오 는 세대에 그를 71억하게 함으로써 이 운동에 많은 결실이 맺도록해 야 할 것이다. --------------------· 껏 옛 -* ‘ - o1: ·’통 * -‘ · :'-,_If f -·~ ·~ oH잠국 맛도 소문났릅니다. 7 DAYS OPEN !!A.M. - 12P.M. ( 213) ~82-4570 r.-1 뿔 2010 W. 9TH S'f., L.A .• CA. 90006 ---------------~---- 29 30 딘 특집 / 민중과 새로운 신학 - 어느 민중신학자의 유업 한완상 6. 한때는 지구적인 위기에 관심 서남동교수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과한스 러움을 안겨 주었다. 그 까닭은 명백하마. 그의 인간성이 많은 사람 을 울먹이게 했으며, 그의 학문적 관심과 공적이 새로운 한국적 신학 의 태동과 발천을 바랐던 사람에게 큰 희망을 주었기 혜문이마. 그의 · 온후하고 다정했던 사람됨이 이제 우리 주변에서 사라졌고, 그의 개 척자적인 학문의 노력도 우리 주변에서 없어지고 만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한혜 그를 안테냐 신학자라고 불렀다. 새로운 신학사상이 발표될 혜마마 그는 한국신학자로서 가장 재빨리 그것을 접하고 또 그것을 소개해 왔다. 그의 신학적 말초신경은 지극히 예만하였기에, 그의 신학적 촉각이라는 얀테냐에 걸리지 않는 새로운 신학사상이란 별로 없었다. 비록 그 자신의 독자적 신학은 없었마 하더라도 신학의 최첨단을 걷는다는 보람으로 열심히 신학의 프론티어에서 종횡 무진 뛰었던 것 갇마. 그런데 이같이 신학의 최일선에서 활동했던 것이 후 일 만중신학의 터를 닦는데 적지 않게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쉽게 짐 작할 수 있다. 서남동 교수는 신학에만 관심을 쏟은것이 아니마. 그분은사회과학 역사학, 문명비판둥에도 판심을 쏟았다. 아마도 그사상의 폭에 있어 그분을 따라 갈 신학자가 별로 흔치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를 ‘ • • • 테 면, 1950 년도초에 그는 소로컨 (P.A. Sorokin) 같은 세계적 사 회학자의 그 방대한 사상체계를 소개하였다. 당시 한국 사회학자들 도 소로킨에 대해 찰 모르고 있을 때인데, 그는 한 목회자로서 소로 컨을 벤역하고 소개했었마. 신학의 언접학문에 대한 그의 욕섬은 굶 주런 사람이 음식에 대해서 갖는 게걸스러움에 견줄수 있을 것이다. 이와같이 학문의 최첨단과 그 넓은 폭에 섭취랬던 서남동 교수는 그만큼 그의 사상의 춧점이 유동적이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그가 197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생태학에 판심을 쏟았다. 이때는 샤르멍에 빠져 있을혜였다. 인류의 생태계의 위험이 그의 신학적 사 고의 한 중요한 새로운 준거틀 (frame of reference) 이 되었마. 그러기에·언간의 윤리도 이제는 개인 윤리의 단계를 지냐게 되었고, 사회윤리단계도 지나치게 되었다고 그는 믿었다. 가창 심각하고 적 합한 현대윤리는 생태학적 윤리라고 확신했다. 개개인의 도덕적 품 격을 강조하는 윤리는 농경시대에 적절한 것인지는 몰라도 산업시대 에는 부적합한 것으로 생각했다. 산업화와 더불어 각종 구조악이 팽 배하게 되면서 계굽적 이해 갈둥이 사회정의를 중요한 사회윤리의 내용으로 부각시키게 되었다. 허나 지나친 산업화, 근대화, 공업화 도시화가 인류생태계를 위태롭게 하면서부터 한 특정 계급이나 집단 의 위기가 문제가 되지 않고 인류전체의 생존이 위협을 받게 된다는 돗에서 생태학적 윤리가 가장 심각하고 가장 적젤한 현대 윤리라고 그는 믿었다. 이같은 인식은 1970년대부터 심각하게 거론되기 시작한 생태학 의 경고에 기초를 둔 것이마. 그의 신학적 촉각은 이미 로마클럽의 그 암울한 보고에 와닿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는 사회정의라는 윤리 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 있다고 믿었기에, 그의 신학은 이배만 해도 사회정의를 심각한 윤리 내용으로 보았던 민중적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었다. 1970 년초는 한국역 사에 서 참으로 어 두운 혜 였 다. 유신체 제 의 출 범, 천 태일의 죽음에 따른 노사문제의 심각함, 정치적 억압의 제도 화에 따른 여러가지 사회문제가 많은 사람들의 판심을 사로잡을 배 인데도 서교수는 생태학적 윤리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마. 6 그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들 그에 게 커 다란 천기 가 마련되 었다. 1970 년 중반, 그는 나이로비 31 32 에서 열런 세껴l교회협의회 ( WCC) 총회에 참석하여 큰 충격을 받았 마. 세계교회가 한국교호1의 인권투쟁에 큰 판심을 가지고 있으며 , 김 지하의 시가 세계교회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고 있마는 사실을 발견 하고, 서교수는 자신이 한국교회와 한국민중의 몸부럼을 외면해 왔 마는 자각에 이른 것이마. “우러것 ”에 대해서 지냐치게 무판심했 던 자신윤 발견했던 것이마. 하 71야 생태학적 위기가 우리의 위기이 긴 하냐 그것은 지구적인 위기이기에, 천 태일을 분신자살케한 처절 한 “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없었다. 바로 이러한 깨 달음을 갖고 그는 돌아오} “ 우리 것 ” , “ 민중적 인 것 ” , “ 실천적 언 것 ”을 보마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이 l쩨껏 그에게는 신학이 이론이었지 응용은 아니였마. 그배 까지 그 에게는 신학이 구미 중심의 사상이였지 우리의 것이 아니였다. 그배 까지 그에게는 신학이 체계적 학문이였기에 그만큼 추상적인 체계였 지 “거리의 학문”이냐 “현장의 학문”이 아니였다. 그런데 1970 년대 중반부터 그의 학-문세계는 연구실에서 거리에로, 추상의 세껴1에 서 현장의 세;석l에로 옮겨지 가 시작한 것아다. -울론 이러한 변화를 갖마준 국내적 요언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마. 그가 한혜 회장으로 있었던 한국기독자교수 협의회가 1970 년도부터 당국의 감시를 받아 오다가 1975 년부터 1976 년에 걸쳐 상당수의 중앙위원들이 ( 서교수 자신을 포함해서 ) 학원에 서 추방되었마. 이 러한 현실의 불의 앞에서 그의 생태학적 인식이 뒤로 쳐지게 되었다. 천면으로 다시 냐오게 된 것은 예러한사회윤리의식이었다. 1975년 서 남동교-수 자신을 포함하여 안 병 무박사, 이 문영 교수, 문 동환목사 가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마음해 2월써l는 김용준, 노명식, 이우 정, 남정길과 펄자 등 여러 사람이 같은 쓰라림을 겪었마. 그 천해 에 추방당했던 분들은 이른바 “ 명동사건 ”에 휘말려 옥고를 치루게 된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역사적 현실 속에서 서교수의 얀테 나는 이 제 우리위 비극적 현실, 민중의 한에 찬 서러움, 현장에서 들려오는 만중의 신음소리에 민감해지기 시작하면서 방황했던 과거의 안테나 식 추적은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의 신학의 지평은 민중 의 현장, 거리의 현장으로굳어지게 되었다. 근 30년간의 그의 신학 적 순례와 방황은 민중신학 앞에서 딱 범추고 만 것이다. 서교수를 포함한 여러 기톡교 지식인들의 고난의 현장과 이름없는 민중들의 한 에 찬 현장이 그로 하여 금 “ 우주적 ” , “ 지 쿠적 ” , “ 생 태 학적 ” 세 * • • 계에서 만중적, 민족적 현섣어l 관심을 돌리거1 한 것이마. 그의 신학의 맥락( context ) 이 한국민중의 현실이 되면서 그의 해석학적 순환은 불가피하게 역사적 여l수, 예수의 역사적 활동을 재 조명하도록 하였마. 이렌 시각에서 그는 아라이교수의 『예수의 행 태 : 역사적 접근에 의한 예수이해 』를 벤역하였마. 그러스도란 시각 에서 예수를 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 사적 인물, 사회적 존재로서 폐수를 보다 써롭게 우리 상황에 비추어 해석하려고 한다. 예수의 고난파 죽음을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 한 정치인의 고 난과 처형으로 이해하면서 그 사살이 우리의 맥 락과 상황에 던져주 는 오늘의 뜻을 다시 찾으려 하였다. 그의 해석학적 순환은 예수를 천 태일의 고난과 죽음속에서 재발견하게 도와준 셈이다. 갈릴리의 만중은 우리의 평화시장의 민중파 이어지는 것이다. 6 그의 주제는 민중과 동시에 해방 예수는 민중과 더불어 사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민중되 섬을 주목하면서 민중의 해방이란 문제를 해방의 차원에서만 아니라 민중의 차원에서 마시 조r명하는 것이다. 남미의 해방신학이 해방의 사건에 더 큰 역점을 준마면, 서교수의 신학은 민중의 한파 그 몸부 럼 그러고 그들의 언어와 삶에 더 큰 역점을 준마. 이른바 민중의 사 회천기에 큰 판심을 쏟는다. 민중의 설화, 민담 그리고 소설에 나오 는 띤중의 한 등을 신학적 성 찰의 대 상으로 삼는마. 그렇마고 해서 서교수는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차별하는 구체 적인 사회 쿠조적 현실을 사회파학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결코 과 소평가하지 않는다. 서교수를 남미의 해방신학자들에 견주면, 사회 과학적 방법을 얼마간 덜 원용한다고 하겠으나, 마른 민중신학자들 에 견주연 사회학적 또는 사회경제사적 접근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강조해 온 분이 다. 민중신학을 주로 문화신학적 관점 에 서 펼쳐 보려 고 애쓰는 신학자들파는 달러 、서교수는 탈춤, 민담 둥 민중의 얘기 들만을 중요한 신학적 자료로 생각하지 않는마. 바록 그의 예기치 뭇 한 떠남이 그의 의도를 실첼시키지 못했지만, 그는 사회과학적으로 민중의 “ 오늘 ”의 현실에 접근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문화신학적 접 근이 “ 어 제 ” 의 민중의 “ 문화적 표현 ” 에 크게 주 목하는 것 과는 . 33 34 마른 입장을 취하였다. 그에겐 “어제 ”의 민중의 “얘기 ”도 중요 하지만 동시에 오늘의 민중을 억압하는 “사회구조적 ”제약에 대한 “사회과학적 ”통찰도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에겐 민중파 해 방이 모두 중요한 신학적 주제였마. 특히 면중의 한은 그에게 가장 적절한 주제였마. 한은 개언적언 원한이 아니다. 민중의 한은 역사적 · 구조적 불의에 의해 형성되고 축적된 정감으로서, 한펀으로는 이것이 승화되어 예 술의 형태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써 이것은 구조의 변화 를 불러 일으키는 혁명의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한은 억울한고통이 기에 사사로운 웬한이 아니라 이것을 부당하게 짐지우는 역사와구조 의 산물이다. 복음은 이런 뜻에서 한 풀이의 소식이다. 그래서 한맺 힌 민중들에게는 예수의 삶파 그의 메시지가 바로 기쁜 소식이 된다. 예수가 한의 사제였다연 오늘 한국민중에게도 한의 사제가 필요하마. 가장 큰 만중적 • 민족적 한을 서교수는 몇가지로 지적한다. 외침에 시 달려 온 우라 만족 내 부에 천빈으로 또는 노예 같은 신분으로 오랫 동얀 차캘받아온 사람들의 한, 여성이기에 가부장적 문화와 체제에 의 해 부당하게 차별받아온 여 성 , 분단으로 인해 막중한 안팎의 압력 에 시달려 온 만중들의 한 둥이 그것이다. 오늘을 초점으로 놓고 보 면 조국분단에 연유한 만족과 만중의 한은 참으로 크다 할 것이다. 이 한을 누가 풀어주랴? 바로 이러한 시대적 역사적 물음 앞에서 선교 의 사멍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사람들 중에서 우리는 민중신학자들을 발견하고 그 중에서도 한의 사꽤의 사명을 남달러 강조하는서목사를 본마. 민중신학은 그러기에 한풀이 신학이마. 한이 거리에 팽배하고 역사 현장에 충만하다고 볼때 만중신학은 곧 거리의 신학이요, 현장 의 신꽉이 요, 사건의 신꽉이 다. 서 남동 교수는 스스로 한의 사제 가 되려고 몸부럼치마가 많은 곤욕을 치루고 마침내 1984년 7월 19일 한많은 한반도 한구석에서 한을 잊은채 웅극적인 한의 사제이신주넘 곁으로 떼나셨마. 6 그분의 인간적 n 인격적 분위기 이제 냐는 서교수의 인간됨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분이 뒤로 남기신 것 중에서 그분의 인간적이면서도 언격적인 분위기가 가 ,. • • 장 값진 것으로 얀마. 항상 조용하게 웃으시면서도 그 강언했던 성 품, 치지어런 영웅주의나 감상주의적 격렬함이 전혀 없는 담담랬던 성품이 우리의 뇌리에 갚숙히 박혀 있다. 그려니까 서교수께서 “ 명동사건 ”으로 옥고를 치루신 후 어느 일 요일날 한빛교회에서 만났다. 갈펠리교회 예배가 끝난 후 이렌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명동사건에 동참하지 뭇했던 것은 유감으로 얘 기 했더니, “누리같은 신학교 교수가 아무리 옥에 가도 별로 효과 가 없어 요- 소위 제 국에 학 교수가 갔다 와야지 ------ ” 라고 하는 냐에 게는 펙 아픈 말씀을 하셨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1976년초에 내가 한달먼저 학교에서 쫓겨났다면 함께 이 사건에 참여했을 터안데 2 월말에 쫓겨난 탓으로 그만 그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마. 서교수께서 는 분명히 예언자적 충고와 발연을 하신 젓이다. 1976년 3월 중순 경 서교수와 냐는 함께 용산경찰서에 끌려가서 그해 발표했던 “ 3. 1 민주선언 ”에 대한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정말 취조당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후 우리는 1980년 그 끔찍했던 봄날의 날배락을 함께 받았고, 같은 지하실에 갇혀 같은 고통을 당했다. 정말 그는 “ 제국대학 ”교 수와 함께 그 고통을 받으셨는데, 당시의 그 아픔이 너무 컸던것 같 다. 서교수께서는 자기자랑을 뭇하시는 분이다. 늘 수줍여 하신다. 옥 고를 치 루고 냐온 사람들이 간혹 독선에 빠지 기 도 하고 자기 자랑에 열심일 수 있는데, 이분은 항상 자기 경험앞에서 겸손하셨다. “명동 사건 ”으로 옥고를 .치루고 출옥했을혜 우리는 환상예배를 가졌마. 출 옥소감을 얘기하는 자리에서도 서교수께서는 옥중에서 배운 바가 많 다고 말씀하시 고, 특히 젊 은 한국역 사학자들에 게 배 운 바가 크다고 하셨마. 자기 역사에 대해 무판심했던 자신을 참회하는 뜻이 담긴 말씀이었다. 한국 최근세사를 새롭게 민중적 차원에션 이해하시려는 모습이 뚜렷하였다. 자신의 고통을 영웅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언어 와 표정은 전혀 없었다. 냐는 그러한 소박한 모습속에서 현대적 셰 인트 ( 성안 ) 의 품위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정말 그분은 오늘 한국 이 낳은 성자안지도 모른다. 1980년 그 지긋지긋한 8주간의 지하설 생활에서 벗어나 우리는 서대문 교도소로 이감되었다. 함께 징역잘이를 하면서도 나는 서교 수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러 져러한 일로 옥중은 시끄럽기 마련이 35 36 다. 우리는 동료 “최수”중 누구 하나라도 억울한 취급을 당한마고 생각될 혜는 옥문을 발걸로 마구 걷어차면서 “소란 ”을 피웠다. 그 런데 이러한 소란을 펴울혜는 모든 동료 “죄수 ”들이 함께 행동하기 마련이다, 한 예외가 있다면, 우리 서남동 목사넘만 혼자 가만히 계 신다는 사실이다. 그분은 오로지 독서삼매경에 빠져 “ 소란 ”에 끼 어 들려 하지 않았다. 참으로 양천한 모범 수였 다. 1980 년 봄과 여름의 경험은 그에겐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이었다. 재판을 받으시면서도 그분은 자기의 연약함을 감추지 않으시고 정직 하게 표현하셨마. 강할수 없는 당신의 연약한 처지를 동료들에게 솔 직히 말씀하시는 그 겸손과 용기에 대해 오히려 우리는 맑은 정신으 로 이해할 수 있었마. 6 그분은 이 시 퍼 의 한의 사제 ·‘ 냐는 서교수와 함께 1 1월에 출옥하였다. 그후 그는 천에 봉직했던 기독교선교교육원의 원장자리에 복귀하려고 했으냐 얼마동안은 당시 기독교장로교 총무였던 분의 비협조로 어려움을 겪으시마가 마침내 소원대로 원장이 되셨다. 원장으로서의 서교수의 삶은 펙 의욕적 이 었다. 그는 자기의 제자가 직책상 자기 상관이 되더라도 과거를 개의 치 않고 반드시 각듯한 예철을 갖추시었다. 새로 기독교 장로교단의 총무가 되신 검목사의 증언에 따르면, 해외여행할 혜마마 자기 은사 안 서목사넙이 반드시 제자인 자기에게 와서 출국신고도 하고짝듯이 언사를 할 때마마 몸둘 바를 모르겠다고 했다. 정말 아랫사람에게 예 절을 지킨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권위주의나 허세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도무지 상상뭇할 노릇이 다. 그분은 권위 주의 와는 참으로 거 리가 먼 삶을 사셨던 것이다. 영웅주의냐 객기는 그의 삶에서 조금만 치도 바집고 들어설 수 없었다. 냐는 지난 3년 가까이 미국서 나그네 삶을 살면서 두번 서교수를 펄수 있었다. 한벤은 뉴욕 목요기도회에 오셔서 말씀하셨을 때였다. 그빼도 약 40분간 민중신학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때 잊을 수 없 는 말씀, 지나가시견서 각주같은 얘기를 하셨는데, 부활은 모든사람 의 부활이 아니라 .억울하게 처형된 사람들만의 부활이라는 말씀이셨 막 부활의 보편성을 그분은 거부하셨다. 하나넘의 사랑이 역사현장 • ’ • 속에서는 분명허 선택적이듯이 부활사건도 선택적 시-건이라는 것이 마. 그러고 지난 5월 말 뉴욕으l Stony Point Center에서 가졌던 재북-마 기독-학자회의에 오셔서 깎막한 언사의 말씀을 하셨마. 그때는 펴 파로해 보이셨고 체중이 엘마간 준 것 같았마. 그빼 l분의 성자다운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이야 어떻게 알 았으랴/ 7월말 냐는 서울서 온 서 광선교수의 전회를 받고,병상에 누워 계시면서 찾아온 동료에게 “우리 천국에서 만납시마--- ” 라고 말씀하셨마는 얘 기를 듣고 냐는 가슴이 뭉클했다 하느넘 나라 천국 이 이 역사속에 이룩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마해 사신 그분께서 완 성된 하느넘 냐라에서 다시 만나자는 유언은 우리에게 천국완성운동 에 더욱 매진하라는 부탁의 말씀으로 들렸다. 지금은 모두그-곳을향 해 달리고 있을 뿐 종착역에 이르진 뭇했다. 허냐 조만간 우리 모두 는 그곳에 이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시고 우리 곁을 먼저 떠냐신것 이다. 1984 년. 카톨릭 선교 200주년, 개신교 선교 100주년과 동시에 오오웰( Orwell) 의 불걸한 < 1984 년 >을 맞으시어 우리에게 민중 신학의 향도의 모습을 더욱 힘차게 보여 주시던 중에 그분은 우리곁 을 떠냐신 것이다. 그분의 인간적언 정직함과 언격적인 겸손함을 생 각할 빼마마 하느넘께서 이시대 우리 민족과 민중에게 보내주신 오 늘의 성자를 마시한번 감사드리고 싶다. 우리 시대의 한의 사제 서 남동님을 거리며. -- ·- - - - - - - - - - - - - - - • :=찌j ASK ME fl I ;?γ헬웠갔 I How to get life insurance protection and ... i솥-- I competitive intere-, t in ONE plan. ω繼활뿔. I 내일이면 늦을지도모릅니다. 오늘 전화를해 주씹시요. 뉴욕생명보험 정 태봉 37 38 口 뿌리顧를파 똥틀륙아시아 처|저|으| 변화오} 는과를륙교류으| 전말 o~ 드크A | 〈그 L- -「 작년말까지만 해도 한반도의 위기가 마치 초읽기를 시작한듯이 숨 가쁘게 치솟고 있었다. 방어형에서 공격형으로 바뀐 팀스펴리트군사 연습, 미일한삼각군사동맹 , 그러고 대한항공기격추사건과 랑군사건 둥이 동북아시아 정세의 긴박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금년들어 3자회담의 제의와 더불어 미묘한 움직임이 있 더니 지난 6월이래 한반도 정세에 본격척 변화가 일어 나고 있다. 레 이 건의 중국방문, 슐츠의 서 울방문, 호요방의 북한방문, 북한수뇌 의 쏘련 및 동구권방문, 쿠노쥬지 조일의원연맹위원장과 이사바시 사회 당수의 북한방문, 마 야자와 일본관방장관과 호요방과의 한반도문제 에 판한 의견교환, 어업협정갱신을 위한 자민당의원 마니와 후쓰노 미야 참의원의 평양방문 둥 잦은 방문외교활동이 있었고 남한수뇌의 일본방문도 있었다. 북한은 또한 합영법을 통과시켜 외국인투자의 길을 열어놓았으며 일설에는 중국에서 실험하고 있는 『경제특쿠』개설을 서둘고 있다 는 것이다. 청진과 원산을 국제항으로 개항할 것올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분단이래 처음있는 남북한간의 수채민쿠호물자 천달은 이러한 물 밑의 움직임을 배정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위 장평화공세냐 아니냐는 더 두고 보아야 알 것이지만, 한반도 주변정 세 에 본질적 안 변화가 일고 있는 듯이 보인다. 먼저 동북아시아의 전략쿠조의 틀이 서서히 변하고 있마. 펜타콘 • • • • 중심의 미국군부는 계속 마일한삼각군사동맹체체를 추구하고있지만 국제정치역할의 축이 점차 미 · 일 · 한의 좁은 삼각판계에서 미 · 일 중의 넓은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중국이 야러한 삼각체제의 한 멤버가 되고 중국의 국가목표를 경제성장에 두고 있는 사실은 동북 아시아정세의 중요한 변수가 변화하고 있픔윤 뜻한다. 이것은 이념 노선과 안보쿠조가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는 냉천사고방식에 중요한 변화를 뜻하며 따라서 동북아시아는 대결에서 협조체제로 천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 • 일 • 중은 한반도문제를 되도록 로칼화 ( 국지화 ) 하려고 한다. 그러나 남북대치의 심화가 랑군사건, KAL기사건, 3자회담제얀등 으로 계속 글로발화( 국제화) 하게 되자 이 세나라는 한반도문제의 보다 근본적 해결을 모색하려고 서두르는 것 같다. 한반도 긴장완화에 갚은 판심을 갖고 있고 또 1 번타자가 된 것은 중국이다. 금년초 조자양 방마때와 레이건의 중국방문때, 그러고 일 본정치인들과의 교류때마다 등소평, 호요방, 조자양 등 중국지도자 들은 한반도문제를 제기하였다. 동북아시아는 역시 자기네 영역이 라는 자부심을 보이연서 리더쉽을 쥐고 긴장판계를 평화 · 협조체제 로 바꾸어 놓으려는 노력에서 그들의 근본구상을 엿볼 수 있겠다. 그것은 중국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경제성장정책의 조건으로서 평 화체제가 요청되며 한반도의 돌발사태에 휘말려들어감으로써 지장을 받지 않을까 하는고려가 밑바닥에 찰려있는 것이다. 지난 7월에 찾 아간 마야자와 자민당중진에게 호요방은 『북한은 남진할의사도 없 으며 할 능력도 없다. 북은 정치적으로는 안정되어 있는듯 하나 경 제적으로는 더욱 힘써야 하며, 중국의 경제특쿠에 북의 경제천문가 40 여 명 이 한달동안 시 찰하고 돌아갔다. 북은 현재 개 방화를 고려 하고 있으며 이때가 일본이 북과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좋은 기회 』 라고 말하면서 관계개선을 적극 권장한 바 있다. 중국은 미국에 대해서도 3자회담의 제안과 북의 미국과의 관계개 선용의를 천달한 바 있다. 동북아시아 정세완화에 매우 적극적인 자 세를 가지고 있다 하겠다. 북한에 대해서도 레이건 방문직후 호요방이 직접 평양을방문하여 회담결과를 보고하는 등 세심한 배려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난 1 2 년동안 북한수뇌가 등소평, 호요방 등과 공개 또는 비공개로 2, 3차례 만났다는 보도가 있으며 이때마다 한반도주변정세를 함께 겸 39 40 토하고 평화체제의 구축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고려연방공화국안과 3자회담 둥 한반도통일에 대한 시도 를 여러차례 했으냐 별로 진천이 없는데 섣망하고 있는듯하다. 북한 은 동일을 국가목표로 설정하고 되도록이면 80년대에 이루어 보려 고 노력하고 있마. 통일이라는 대천제를 두고 한발자국 크게 내딛어 야 조건이 변화되리라는 판단을 하기에 이른 것 같마. 최근의 움직임은 이를 뒷바침한마. 『합영법 』의 공포는 사회주의 경제의 현대화를 시도하는 한편 동북아시아의 평화구조에의 참여를 뜻하기도 한다. 북한수뇌는 이시바시와 만난 자리에서 @대일 • 대미 판계개선 @한반도 평화성취 및 대화 진천을 위한 적극적 자세를 보 였다. 남북의 체육인 · 예술인 • 과학자의 교류를 행할 것이라는 발언 도하였다. 『국민의 지지가 없는 전두환정권이과는 대화할 수 없다』는 입장 을 견지하고 있으나 민간교류를 증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 체제상 정부의 승인이 없이 민간러l벨의 남북교류가 있을 수있겠는-가 를 고려할 혜 좋든 싫든 정부대 정부의 대화는 꾀할 수 없는 현실이 라하겠다. 남한도 수재 만구호물자를 받은 것 은 용단이 다. 서 울당국도 새 로 쿠축되고 있는 동북아시아 체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로 고심하고 있 다는 흔적이 많막 일반적으로는 남한수뇌의 일본방문이 냐까소네 방한답례형식을 취하면서 한일간의 무역불균형,- 대알부채, 선단기술 의 도입 그리고 일본천황의 사과발언 등-에 목표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변해가는 동북아시아정세에 대한 의견교환과 대북한 견제를 겨눈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말한 북한의 여러가지 최근조처를 외교공세로 간주하고 이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부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냐 현재 서울당 국이 이러한 동북아시아정세의 쿠조적 변화를 모를리가 없고 게다가 86년 아시아게임, 88년 올럼펙게임을 성공시켜야 하는 부담을 얀 고 있는 냐라로서 부정적 자세만으로 대처할 수는 없는데 고민이 있 다 하겠다. 따라서 최근에 내놓은 이산가족찾기제얀과 남북경제회담 제얀 등으로 적극적언 공세를 취하는듯 하다. 서울당국의 이러한 제안을 평양당국이 어떻게 받아들알 것이냐는 매우 흥미있는 일이겠으나 전두환정부와의 대화를 않는다는 자세는 천두환대통령자신과 정부를 쿠별하는 방향으로 적극적인 대응이 있 • / , .. j -- • 지 않을까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최근의 움직임 가운데 가장 뚜렷하고 적극적인자세를 보이는 측은 일본이막 일본은 천동적으로 외교방향감각이 매우 예 만한 냐라이다. 미국이 중국과 교섭을 벌이자 미국에 앞서 재빨리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중국의 혜제계획에 참여하였다. 일본정계 에서는 대북한 판계를 수립하지 뭇한 것을 두고 천후 40년 일본외 교 미완성의 최대과제로 여기고 있마. 동북아시아정세의 중국이 니 시아티브를 받고 미국의 의중을 타진한 지금 일본은 대북한관계개 선을 서두르고 있다. 최근와 일련의 움직임을 자민당정부가 아난 사회당 또는 친선단체를 통한 교류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일본외교 가 한줄기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면서 북한과의 인사교 류 천과 후에 정부와 협의하는 것으로 보아서 일본의 풍향을 감지할 수 있다. 마국은 현재 대통령선거를 치루면서 조용한 것을 건드려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 긍 정적인 태도를 가진 것은분명하다. - 일본의 움직임이냐 한국의 쿠호 물자언수 등 긍정적인 자세가 마국과 전혀 협의없이 이루어질 수 없 마는데서도 그러한 미국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겠다. 대통령선거가 끝나는 금년말이냐 내년에 3자회담 및 기타의 동북아시아정세변화 에 대하여 적극적인 대응을 보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동북아시아 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마이나믹한 지역이다. 따라서 미국도 계 속 군사적인 방법만으로 지배하기 보다는 활발한 경제 · 문화교류를 동해 이 지역과 협력해 나가는 것이 좋으리라는 판단이 섬직하다 위 에 서 분석 해 본 것처 럼 현재 동북아시 아정 세 는 유동적 인 단계 를 지 나서 변화의 코오스에 들어 섰 다고 보여 진다. 이 변화의 코오스가 금후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어떤 형태로 귀착될 것이냐에 판심이 집 중되고 있다. 결국 동아시아의 경제 • 문화권이 그 종착역이 아닐까 . . 이념과 제도와 인종의 차이를 넘어서 새로운 문화의 창초를위한 걸 이 동아시아국가가 안고 있는 세계사에 대한 책임이라 할 것이다.본 격적인 해빙기가 되어 봄의 화신이 쿠호물자 수수라는 40년분단사 의 기적을 날라왔다. 그렇다면 화창한 봄이 멀지 않았다는 징후가 아닐까. 41 42 口 뿌리體를파 「한일똥반」어| 앞서 남북똥면f를 닙}란}c~ 김상일 한국과 일본은 과연 동반시대를 구축하여 새시대의 창을 열 수 있 을까? 그렇게 되었으면 얼마斗 좋을까? 한국과 일본은 가장 가까운 냐라끼리로 숙명적으로 주어져 .있다. 어느 냐라보다도 서로 돕고 협력해야 될 입장에 있다. 지난벤 영국 파 알헨티나가 포크랜드를 두고 싸움을 할 혜 영국이 승리할 수 있었 던 것은 미국의 힘 혜문이었다. 모든 군사정보를 미국이 제공해 주어 영국은 군함 몇 척으로 알헨티나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것 을 두고서 마 · 영 동 l관이 라 할 수 있 다. 어 려 울 혜 서 로 도와주는 것 서로 나누어 갖는 것, 이런 것을 형제애에 비걸수 있는국가간의 『동 반』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마국이 영국을 돕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의 핵심세력을 이 루고 있는 앵글로 색슨족은 17세기 영국에서 건너온 민족이마. 그러 나까 미국의 종주국은 영국이다. 비록 미국독립천쟁이란 미 • 영 사 이의 싸움도 있었지만 마국의 문화는 그대로 영국의 문화이다. 특히 종교 즉 기독교에 있어서야 더 말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미국은 문 화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영국에 뿌리를 두고 있기 혜문에 활이 얀으로 굽는다고 영국이 외국과 싸울 혜에는 영국에 군사정보를제공해서 승 리를 돕는 것이다. 이러한 영국과 마국쯤의 관계가 한국과 일본과의 판계라 할 수 있 다. 일본천황이 입으로 칙접 고백한대로 일본의 국가형성기에 『도래 인』 ( 바다 건너온 사랑들, 즉 한국인 ) 이 절대적으로 지도적 역할을 했으며 그들이 오늘 천황족의 조장이라는 것은 일본 황실묘의 발굴에 • ,. • 서 입증되고 있다. 또한 한국은 일본에 불교, 유교 같은 중섬사상올 천래시킨 것은 불론이요, 농사짓는 법, 도자기 만드는 법,옷만드는 법에 이르기까지 천달 , 전수해서 오늘과 같은 일본을 만들게 한 정 신적 기초를 형성시컸던 것이마. 실로 일본야 한국에 업은 덕은 미 국이 영국에 업은 덕의 배 이상이라해도 파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냐 얼본은 마국이 영국에 대하는 만큼의 은덕을 감사하는 마 음을 섭분의 일도 갖고있지 옷하다는 데 한국연A로서의 유강이 있 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옛 말이 있지만, 일본은 우리가 먹고 업올 것과 문화를 준 대신에 항상 우리에게 칼파 총으로 내밀어 왔 다. 수백벤의 크고작은첨략즉 16세기의 임진왜란은우리 문화유 산에 크냐 큰 피해를 주었다. 10년 천쟁에 우리는 먹을 것이 없어 서 사랑의 시체를 구어먹고 우리를 도우러 온 영냐라 군사들이 솔먹 고 토한 음식을 주어먹었다고 한마. 우리 역사책은 천소당하고 문화 재산은 약탈당하고 말았었마, 그뿐인가/ 금세기에 들어와서는 거의 반세기에 이르는동안 우 리는빼아픈식민지 생활의 질고를겪어야만했었마. 그러나일본은 한벤도 우리에게 사과하는 말이 없었마. 중국이나 다른 냐라에는 사 과했어도 우리에게는 한마다 정식사과가 없마가 겨우 천황이 지난 9 월에 “역사의 한예 유감스러운일이 있었다”고사과인지 아난지 도 모를 말을 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로 사파했다는 것 이 상으로서 실제 행동이 말에 얼치해야 한다. 말을 몇백벤 해서 무엇 하랴? 말에 앞서서 실제 행동에 한가지라도 옮기는 것이 더 중요하 다. 일본안에 있는 한국인에게 차별적인 지문날언을 시키고 그들에 게 아무런 법적지위도 보장함이 없으며, 경제적으로는 무역역초가 날로 더해가고 있으며 , 교과서는 고쳐지지 않은 상태이다 . 이런 상황속에서 우리가 『한일동반』시대를 구가한다는 것은 짝 사랑하는 사나이의 장꼬대가 아닐까? 돈이냐 뱃어 먹고 차버릴 창 기의 품안에서 일장춘옹을 구가하는 것이 『한일동밴』시대의 실상 이 아닐까? 수천년의 역사를 통해 볼혜 일본은한벤도우리와 동 반선린 판계를 가진 적이 없마. 그 버릇 개 주겠는가? 그들이 언제 마음먹고 규수가 되었다고 그들에게 우리의 순정을 바철건가? 그들 에게 그렇게 하기전에 지난 역사를 한벤 들추어 보는 것이 현명한태 도가 아닐까? 그래도 만약 한일동반시대를 우리냐릎대로 구축해 보고 싶다연 일 43 44 본에거l 끽1 --(-되는 71대뜰 거는 것은 위험쉬’-담이 이루 말한 수 없이 따 프는 것이나 우리 편에서 만단Bl 조섬을 하고 준비갈 갖추는 걸 밖에 없마. 여 가에 우리가 갖추어야 할 태도를 적어 보자. 첫째로 우리 는 지금 몸이 성하지 않은 상태에 있마. 몸이 두 토막으로 냐뉘어져 있다. 즉, 남파 북-이 분단되어 있다. 어찌 이런 상태에서 외국파 -동 반관계플 무-축할 수 있단 말인가? 제 폼이 건강해야 남파으l 관계도 건강한 법이마. 『한일동반』이란 말이 마치 남쪽 반 토막이 일본파 유착해서 북-쪽 반토막을 막겠마는 듯한 언상을 강하게 주고 있마. 이것은 위험천만 한 동반관계이마. 젤대로 그렬 수 없다. 이것만 보아도 일본의 『동 반』개념의 실상을 알 수 있다. 한 쪽과 붙어 다른 쪽을 치겠다는 것 그것은 곧 붙어있는 쪽도 미-지막에는 또 먹겠다는 겨l략이 아니고 무 엇이겠는가? 황새와 조개가 싸우는 동얀어부가 양쪽을 마잡는다는 어부지리의 교훈을 잊어서는 얀될 것이마. 과연 한일이 합하여 북을 쳤을배 그때 낚은 남쪽을 일본아 그냥 둘 줄로 아는가? 천만의 말씀 이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은 6·25때 『일본군이 진주하면 북과 손 잡고 일본윤 치겠다고 선언했었다. 우리가 한일동반관계를 구축하기 이전에 먼저 구축해야 될 동반 판계는 남북동반관계라고 보는 것이다. 그렌 의미에서 이벤 남북적 섭자사의 구호물자 교환어l 둬이어 제안된 남북경제회담이 성공되기 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같은 교훈을 북도 배워야 한다. 북도 남을 외면한 채 일본과 짝을 지어서는 얀된다. 한일 이천에 남북이 진정한 동반관계를 이룩해야 한다. 만약 이 렌 천제없이 한쪽이 일방적으로 일본파 짝한다면 신라 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킨 것과 꼭같은 찰뭇을 범하게 될 것이다. 함석헌선생의 말대로 신라의 이러한 『냐당연함』 은 역사에 씻을 수 없는 한이 되었다. 일본은 한일합방직전에 『내선일치 』를 내세웠다. 즉 일본과 한국 은 민족이 하냐이고 문화가 하나이니 합해야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 논리에 뜻있는 국학자들 까지도 속아 넘어가 부일했던 과거를우리는 알고 갔다. 『한일동반』 이란 새 술어가 혹시 『내선일치 』의 논리와 같지냐 않은지 의심스렵다. 두 나라는 엄연히 독립된 개체의 존재 로 서 도울 혜는 돕고 협력해야지 둘을 하나로 섞어버리는 것이 『동반』 의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일본은 커지연 커질수록 섬을 벗어나려고한 • • 45 • 다. 그들의 제일 큰 콤프렉스는 그 좁은 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열 둥의식이다. 이제 『동반』이란 말을 내세우고 쥐가 마치 닭을 잡아 먹을 혜 한쪽 마리는 긁어주연서 한쪽 다리를 파먹는 논리를 전개시 커지나 않을지 재삼 경각심을 높여야 할 것이다. --------------------· 투자입니다 값진 가장 얼생에 당선 0 -L 육 , 교 천- ONE OF THE BEST INVESTMENT IN YOUR LIFE 사람 잘하는 전 문전을 흘륙은 사함은 운전할 때 몸과 마 상태를 잘 조절하며. 자기가 운전하는 음의 정확한 지 식을 가지며, 안전문 대하여 ~~어! 교통법규를 그러고 관한 규칙, 요령 천어l 않 우선권만을 주장하지 춘수하며,자기의 갚다.그리고 상대편의 잘옷할때나볼리한 휘말려 사고에 부딪치는 경우에도 들지 않고엑방활딴. 상황에 ?% • 킴스운전학교 (213) 731 - 0833 {213) 404「 -1851 (714) 537 - 0086 (2.13) 326- 5233 (213) 891 - 0691 (213) 330 - 4330 교장김응분 Blvd., Los Angeles _ , CA ” 0019 .로스핸헬레스붙교 ·오렌쳐카훈El룬교 3306 Venice 끝까지 펙임을 완수하는 교사진 킴스문전학교의 ·싸우스베이룬교 ·뿔 리 훈 교 ·하시엔다, 쿄비나본교 • 퓨션 f」보‘자 치노 - -?-션 !션 허 시 힘 -서 도- - 」il_폼:겹 -÷F우 l I간 아교육 • 추 l 뀔-푼-선 자 교육- . 듀선교사 C양성 그1;무--느 를를켈y、 -도듣 흥를를 졸흩I :iii KIM·s DRIVl"G $〈뻐OOL • • I I I • • I • • I I • • • • • • m → i기 46 口 뿌러R홈를필 거짓은 말끔히 씻어내고 역사적 명예를 되찾아야 -상항지역한인회의 부재현상을 보고- 편 집 실 우러 한인뜰의 이만역사에 있어서 지끔까지 샌프란시스코는 으뜸 가는 천동을 이어 왔다. 금세겨초엽 하와이에 처음 정착했던 한인이 민들이 미대륙으로 진출할적에 샌프란시스코를 다덤돌로 하여 도약 하였고 ,o l민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모든 활동이 그곳에서 효시되었 었다. 조국의 해방이 이루어지지까지 이민 1세들의 광복운동의 중 심이 그곳이었마는 것은 세언이 모두 찰 아는 바다. 그러하여 샌프란 시스코는 한안이민역사에 있어서 긍지와 자랑의 원천이 되어 왔다.도 산 얀 창호선생의 민족갱생운동을 비롯하여 친일적 미국외교판 스티 븐스를 겨누었던 장 인환열사의 장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그곳의 역사적 기여를 평가하는데 넉넉할 것이다. 그런데 1984 년은 샌프란시 스코 한인사회 의 가장 어 둡고 치 욕적 언 해였마고 말할 수 있다. 선열들이 그토록 값있게 살았던 거룩한 땅 에 대한 모독이 자행되었고, 오늘날 그들의 헌신적이고 애족적인 삶 이 밀알아 되어 이루어졌마고 볼 수 있는 오늘날의 1 백만 재미한인 사회의 가장 냐약하고 치부적인 일연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는 데서 우리의 슬픔은 그지 없마 할 것이다. 한언지역사회의 중핵단체라 할 수 있는 상항지역 한인회가 자아내 고 있는 불화와 잡음은 한해가 마 가도록 수습되지 않고 방치된 채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으나 과연 그곳에서 삶을 누리고있 는, 아니 온 마국에서 새 삶을 가꾸어 나가는 이들의 ·양식과 지성이 그토록 죽어있단 말인가? • -- ’ • 분쟁의 춧점은 어느쪽의 회장단 후보를 ;<l지해야 하는가에 있지않 다. 소위 한인사회를 대표하겠다는 위인이 자신의 학력과 경력을 거 짓으로 꾸였 마는 사실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한인사회 지도인사가 반드시 학력과 경력이 화려해야 할 까닭이 없다. 박사가 되어야 하 고 교수출신이 되어야 한마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더쿠냐 ;소위 명문대학을 나와야 할 이유도 없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면 어떻고 농부냐 광쑤생활을 했으면 어떤가? 자신외 과거를 속이지 않고 상 식에 따라 우리 커뮤니티에 정성껏 봉사하겠 다는 사람이견 누쿠나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션의의 경쟁을 해서 민주방식에따라뽑 히면 그만인 것이마. 거기에는 친정부언사, 반정부인사가 쟁점이 될 수 없고 어느 지방, 어느 도의 출신이 문제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가 일단 미국에 와 살고 있으면 우리는 마같이 재마한인 즉 코리언 아메리칸인 것이다. 우리 삶의 현장은 미국이고 우리 삶의 뿌리는미 국땅에 내려야 하는데서 우리는 마같이 재미한인사회의 일원인점에 서 평둥한 것이다. 돈이 많고 적은 것도 봉사의 제한조건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오늘 날 우리 사회의 공통된 폐습의 하냐는 돈있는 사람만을 내세워 단체 를 운영하는 일이다. 단체에 필요한 재정은 단체군성원들이 골고루 그러고 형판에 따라 내야할 것이고 몇사람들에게 자리와 함께 떠맡 긴마면 결국 우러나라의 헌정사에서 겪었던 것처럼 일반커뮤니티성 원들이 스스로 자기고유의 권리와 책임을 팔아먹는 것이 되어 불의 와 부패가 춤을 추게 될 것이고, 인다언들이 없고 추장들만 들끓는 한인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진정 사회공동체의 주인공은 일반성원 곧 민중이란 사실을 우리 모두가 마시한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상항지 역 한인회 원l 부재 현상을 더 이 상 방관하지 말고 한인사회 의 기본성원인 한언 천체의 지혜와 양식의 힘에 따라 허위가 말끔히 씻 어지고 활기를 되찾아 전진함으로써 그 지역의 역사척 명예가 하루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 -----------------l!!l!!l-91- 독자 펴러분의 투고를 기다럽니다. @ 논문 ( 80매 이내 ) (Q) 시 , 수필, 소설둥의 문예 창작물 -----· --------------- 47 48 口 현[H 여|수전 여 l수가 한국어| EH어난다면 (3) 2J 도특2~ I그 듣록 -「 아난 밤중어1 홍두깨호 얻어맞은 격이 된 .이목사와 그를 따라냐간 교인들은 교호l 페 서 별로 멀지 않은 정 자나무 그늘아꽤 둘러 앉아 -한-동 얀 어처 쿠니없어 할 말을 잊윤 채 서로의 얼굴만 쳐마 보았마. 이유고 성여l수의 형 요셉이 분을 참지뭇해서 씨근거리며 입을 열 었마. “ 목사념 이게 뭐예요? 목사념이 뭘 잘뭇하셨기에 한말씀도 뭇하시고 대낯껴l 그 날강도놈 같은 김천도사에게 쫓겨나셔야 해요? 하냐님은껴l신꺼예요? 하냐넘은지금뭘하시기페 저런 날강도들에 게 벼락을 내려서라도 죄악된 세상을 정화시커지 않고 가만 내배려 두시는 거예요? 그려니까 날강도들이 더 판을 치고 성공하는거 아녀l 요? 이처럼 무판심하고 무능력한 하냐넘을 렷하러 믿어요? 난 뭇 믿겠어요 f 아 ·~ l 답답해 / ” 하면서 두 주먹으로 제 가슴을 쳤다. 그의 아떼지 성씨는 아들이 하는일이 민망했지만 아버지로서 차마 야단을 칠수도 없고 마음속으로만 요셉이 진정해 주기를 바랬마. 요 셉이 제 가슴을 치는 광경을 보다뭇한 그의 어며나가 눈물을 글썽이 며 아들에게 달려가 말렸다. 드디어 이목사가 입을 열었다. “ 이제 요셉군야 한 말에도 일리가 있읍나마. 져 에란 청소년들에;거l 우리 석른들이 얼굴을 들 수가없게 되었읍나마. 우리 기성세대는 이마 이렇게 잘뭇되었지만이제부터 자 라냐는 청소년들에게는 이런 뭇된 유산을 남겨서는 안되겠읍니다. 저 하늘의 별빛이 우리에꺼1 천달되기 위해서는 수백광년, 수천광년φl 걸 리풋이 세상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의 옳고 1릎에 대한 판단과 평가 에도 시깐이 필요한 것입니마. 모든 것은 시간이 말해 줍니다. 참는 • ,. •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풋이 우리-는 참고 가마혀야 합니마. 셔l상 사람들의 판단은 결파에 치중하지만 하냐넘은 동기와 파정을 보시고 판단하섭나마. 아무리 악한 동기를 가지고 나쁜 과성을 거쳤 어도 결과적으로 성공하면 세상사람들은 칭찬하고 영웅으로 받들며 애국자라고 칭찬을 합니마. 그러냐 하나닝은 그와 반대로 션한 동기 를 가지고 좋은 과정을 밟았으면 아무리 결과가 신통 :~1 뭇하고 실꽤 랬더라도 그런 사람을 의롭게 켜 가시고 위로하시는 것입니마. 여러분 들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증오심을 품지 마시가 바랍니마. 사마떠아 여인이 예수넘을 만나 “우리 쏘상들은 이산에서 예배하였는데 장신 뜰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마고 하던데요? ”라고 물었을 때 여1수넘은 “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하나님은 영 이 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여1배할지니라. ”라고 대답하셨 듯이 반드시 예배당안에서만 예배드릴수 있는 것은 아닙니마. 반드시 ∼〔 풍금 ( 올캔 ) 이 있어야만 우리가 찬송을 부를수 있는 것은 아넙나마.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보시는 하나넘은 우리가 어떠한 처지와 형펀 에 있든지 정 성껏 예배드러 면 기쁘λl게 밭으섭나마. 하나넙스스로가 창조하신 룹질에 불과한 건물이나 기쿠를 욕심내다가 오허려 멈죄할 까 두렵습니다. 여러분도 들어서 아시는대로 요즘 우리 한국 교회들 이 갈라지띤서 예배당 건물과 깨 산혜 -문에 서로 싸우고 심지어 세상 법정에까지 들고냐가 하냐닝을 욕되게하는 일이 많습니마. 우리는억 울하고 분할 해알수록 하냐념의 영광을 위해서 참고 참아야겠읍나마. 지금 이 자리가 열마나 좋습니까? 하나념이 키워주신 이 정자나무를 지붕으로 삼고 종종 불어오는 바람에 산들거리는 냐무잎새들을 부채 로 삼고 시원하게 지낼수 있으나 이 얼마냐 감사한 일입니까? 이런 뜻에서 우리 따같이 기쁜 마음으로 찬송 한장 부릅시마. “ 참 아름 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 이제 찾으셨으띤 다같이 부르섭시다.” 이렇게해서 이목사를 따라나온 교안들은 흥분된 감4성을 감사와찬 양으로 전환시 켜 놓았고 복수를 하거 냐 성 천탈환을 하고야 말겠 다는 생각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러냐 서l월이 갈수록 분한 마음이 되살아 내고 동네사람들에게 페배자의 낙인이 찍혀잔것같은 자격지심 혜문 에 견딜수 없어 붐부림치는 혈기왕성한 교인들이 일부 없지는 않았 마. 이목사는이런교안들에게서 무능하다는비난파공격을 받아가 면서도 이들을 달래느라 무척 애썼마. 여름과 초가을에는 그랜-대로 썽자나무밑에 둘러앉아 매주일 야외 49 50 예배 나온 셈치고 여1배드러며 가끔 각기 점심을 싸와서 함께 나눠먹 기도 하나 교언들간에 정다움이 더해갔마. 그러냐 날씨가 점점 추워 지연서부터 이목사와 교인들은 시련에 부닥쳤다. 그러던중 성예수와 함께 국민학교 졸업반인 강순자도 이목사가 인도하는 예배에 열섬히 참석하면서 부모들도 함께 예배에 참석하도록 졸라댔마. 강씨네는 논 은 없지만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야산같은 언덕배기를 개간하여 밭을 일-r-어 밭농사로 생껴l를 유지하는 터였마. 이러한 딱한 교인들의 사 정 을 보다 뭇해 강씨 가 자기의 땅가운데 아직 밭으로 알구지못한 부 분 약 3백평 정도를 교회에 바쳤다. 그래서 그곳의 흙을 파내어 흙 벽돌을 만들어 담장을 쌓았고 석가래와 헌 천막을 사마가 지붕을 이 었마. 그 이듬해안 1954년 3월 3 일에 성예수와 캉순자 그러고 최수복이 모두 양쿠 국민학교를 졸업 했다. 최수복이는 김천도사가 있었던 춘 천 교외의 마을에 서 하숙칩 을 구해 춘천중학교로 진학을 했으냐 성 예수와 강순자는 집얀 형판이 어려워서 중학교에 진학하지 뭇했다. 그러하여 야목사가 도시교회에서 목회하는 천구목사에게 부탁해서 중 학교 교과서 헌책 두 벌을 구해다가 틈틈이 성예수와 강순자를 가르 쳤다. 이 소문을 듣고 종학교에 진학하지 뭇했던 동네 아이들과부모 들이 이 목사에 게 찾아와서 부탁을 하는 바람에 학생 수가 남학생 9 명 에 여학생 3명으로 12명이 되었다. 그래서 흙벽돌로 지은 교회에 모여서 공부하게 되었다. 졸업한지 오래된 학생들도 있어서 성예수 와 강순자가 그중 제일 어런펀이었지만 도중에 쉬지않고 공부하던끝 이라 공부는 더 찰하는 현이었다. 성씨네가 소작언으로 있는 박진사는 장로교회가 갈라진 뒤에도 얼 마동얀은 김천도사의 교회에 냐가질 않았다. 최장로와김천도사도천 에 승락을 받아놓긴 했지만 아직은 뒤숭숭한 혜임으로 교회출석을권 하거 나 조르지 않았다. 왜 냐하면 그들은 성 씨 가 박진사에 게 하소연 하거나 자기들이 했던 일에대해 냐쁜 말을 안할것임으로 받아논 밥 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혜문이다. 박진사는 크리스마스혜 그 지방 유지로서 반 손님격으로 초청을 ‘받 아 교회에 말을 들여놓게 되면서부터 교회에 발걸음이 차츰 차츰 찾 아졌다. 이라하여 같은 논밭에서 거둔 곡식을 먹고사는 박진사네와 성씨네는 각각 다른 장로교회에 냐가게 펴었다. 1955년 8월 광복주일. 교회창렵(?) 안지 교회쟁취(?) 인지 하는 • • • 큰 일이 있은지 2년이 되었고 김천도사가 부엄한지 2주년이 되었 을혜 김천도사는 노회의 약식 강도사시취를 거쳐 목사얀수를 받게되 었고 박진사는 이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지 1 년 8개월만에 장로가 되었마. 그펙나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이 그로부터 불과 몇해가 지난 후에는 노회와 총회의 지도급 목사들간에 에큐메니칼운동파 세계교 회 협의회( w. c. c. ) 가입에 대한 거취문제를 놓고 웅성거리기 시작 했다. 예장과 가장이 칼라질혜에는 기장쪽이 선교사를 배척하고 이 단이라고 몰아세웠기혜문에 선교사들의 태도가 분명했는데 에큐매니 칼 운동에 대 한 찬반문제 를 놓고는 북장로교 선교사들과 담장로교 선 교사들과 함께 에 큐메 니 칼 운동에 참여 하라는 통첩 이 옴으로써 선교 사들의 거취문제는 일단락 되었다. 이렇게 됨으로써 처음부터 에큐 메니칼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이단으로 정최되었던 기장이 선교사들 ι? 과 정신적안 화해가 이뤄지게 됨으로 예장얀에서 반발이 일어나게 되 었다. 그래서 많은 목사들 특히 대도시의 큰 교회를 목회하던 목사 들은 “우리가 늘 선교사들이 시키는 대로냐 하면서 밥이나 얻어먹 는 줄 아느냐 ? ”하면서 크게 반말했다. 양쿠정통장로교회의 김성적목사도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결 단을 내려야 할혜가 다가왔다. 김목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몰 아낸 이목사와 같은 노선올 걷는 에큐메나칼파에는 가담할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최장로는 달랐다. 최장로 생각에는 자존심도 중 요하겠지만 세상만사는 실리적으로 따져서 유러한 현에 붙는게 상책 이라고 생각했마. 그당시 남한의 정치적인 정세를 보아도 야당을 합 네하는 정치인들이 당장 신익희씨가 대통령이 되어 자기네들이 득세 할줄 알고 날뛰었지만 신익희씨가 갑자기 죽고나나 야당 정치안들의 맥이 쑥 빠져버런게아난가 하는 생각이 들었막 그러고 지금은 마국 이 온 세상을 지배하는 판이라 중국에서 독럽운동했얹 사람들은 맥 을 뭇쓰고 이승만대통령같이 미국에서 독립운동했던 사람들이 득세 하는게 아난가 싶었다. 게다가 애초에 박진사를 포섬하기 위해 찾아 갔을혜 선교사들을 팔아서 그의 손주들의 장래 미 국 유학주션을 약 속했기빼문에 여러모로 보아 에큐메나칼편에 서지 않을수 없다는 판 단이 들었마. 그러냐 최창로는 매제안 김성식목사가 자기와 같은 노 선올 택하지 않는다고 해서 안타까워하고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강렬하지는 않았마. 그 이유는·불과 몇년사이에 이렇게 사태가 바뀌 51 52 l녁 이목사의 노선을 따라가게 되듯이 앞으로도 몇해만 더 지내띤 강 물이 바다에 서 만냐듯 김 목-사와도 다시 같은 걸을 가게 될 날이 올것 이라고 낙판했기 때문이다. 그러하여 김성식목사는 처남 매제 간에 한 고장에서 다른 교회를 셔1우고 갈라설 수도 없고 그래봐야 최장로 그늘에서 자란 자기를 따 라냐올 교인들도 벨로 없을것 같아 부지 런히 서둘러서 원주지방의 N AE측 교회로 옮겨칼 웅리-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판국에서 또 다른 장로인 박진사는 도대체 예수쟁이들이 윗 때문에 자꾸 싸우고 패를 가르는지 둘러리로 장로가 되긴 했지만 도 저허 알걸이 없었마. 그래서 하루는 성씨를 조용히 불러 교계동태를 물어보았막 그러나 성씨는 자기가 이목사에게서 어렴풋이 들은극 일 은 있지만 무책임하게 자기나름의 살을 붙여가며 이야기해서는 안되 겠기에 “이목사념을 한벤 만나셔서 직접 풀어보시지요.”라고 권했 다. 박진사도 생각하나 그게 바른 순서일것 같아 하루저녁 날자를 잡 아 이목사를 저녁상에 초대댔다. 그천에는 이목사가 성씨네 가정에 심방을 와서 인사를 해도 별로 들은체도 않던 박진사였지만 이제는 교회 는 다르냐 목사와 장로로서 의 대 면 인데 다 자신이 말은 장로라지 만 어처쿠니없게도 신앙경력이 성씨보다 수섭년이냐 뒤진터라 여간 공손한게 아니었다. 그래 극구 사양하는 성씨까지도 자거의 거실 밥 상에 끌어들여 이목샤의 얘기를 들었마. 그후 박진사는 최장로를 불러서 최장로가 알고있는 나름대로의 교 계동향에 대한 얘기를 듣고 “ 김성식목사가 곧 우리교회를 떠날것 같 던데 그때까지는 최장로의 매제이기도 하고 교회도 수습해야하니 그 대로 지내고 김목사가 떼난 마음에는 무슨 칼파의 목사를 새로 초빙 해봐야 결국은 저쪽의 이목사도 같은 칼파안데 이 작은 고장에서 같 은 노선을 걷는 창로교회가 둘이 있어봐야 동네사람들의 말이 많을 터이니 이목사의 교회와 합하는게 어떻겠오? ”라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최장로는 자신이 이목사를 몰아내는데 배후에서 총 지휘는렀지 만 자신의 성격상 처세술에 능한 자신안지라 앞장서서 남에게 원수지 고 후환을 살짓은 얀해온 터임으로 자신에게는 큰 문제가 얀될듯 싶 었으나 행동대원이었던 정집사가 걱정이 되었다. 그 당시에도 이목 사의 성품을 잘 아는 최장로는 정집사가 그렇게까지 물리적 힘을 가 하지 않았어도 이목사는 순순히 물러설 사람이란것을 알고 있었는데 당시 김천도사의 젊은 기질이 성급한 정집사와 들어맞아 그런사태를 • • 빚었던 것이고 그래서 자신은 입장이 난처해 그 자리를 펴했던 것이 다. 지금 생각하면 자신의 거취를 현명하게 잘 했던것 같이 생각되 었다. 또 하냐 다행인것은 정집사의 성격이 급하긴해도 단순하고 뒤 끝야 없기 혜문에 자신이 찰 달래면 무마될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박장로의 제안에 반대하기위해 내셔놓을만한 구실도 찾을수 없는 터 라 최장로는 “박진사넘 말씀이 지당하섭니다.”라고 대답했다. 양측의 극렬분자 몇 사람을 제 외하고는 교회 가 다시 합하는데 별 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목사의 판대한 성품과 각장로의 권유와최 장로의 무마천략이 성공을 거두어 양구에서는 교회가 다시 칼라지는 대신 마시 하나로 합해지는 경사가 일어났다. 이에따라 성예수가 다 니던 중학교과정의 공민학교도 박장로의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으로 성장 발천해 정규안가 중학교로 되었고 곧 이어서 고등학교까지 인 가받게 되었마. 그러하여 원주에서 교펀생활을 하던 박장로의 둘째 아들이 교창이 되고 박장로는 이사장이 되었으며 이목사는 을 맡게 되었다. 김7 그2..ol 」ι- 「 c 성예수와 강순자는 이 양구밀알중고둥학교의 1 회 졸업생이 되었 고 성예수는 이목사가 이공계대학에 진학해서 집안을 돕고 부모넘의 고생을 덜어드리는게 어떻겠느냐고 권했지만 한사코 이목사가 졸업 했던 신학교로 진학했고 강순자는 춘천간호대학으로 잔학했다. 그러 고 최장로의 아들 최수복은 춘천고둥학교를 졸업한둬 육군사관학교 로 진학했다.( 다음호에 계속) 참고사항 1 .. WCC (World Cowicil of Churches) 는 세계교회 협의회로서 1948 년 8월 22 일부터 9월 5 일까지 흘랜드의 암스렐담에서 처음으로 창렵총 회를 모였는데 이빼 참석한 대표들운 43개국의 149개 교파에서 파송 되었다. 2 • 에큐메니칼운동(Ecumenical Movement) 이란 세계관회 협의회에서 주 도하는 세계교회의 활동안데 • 인간이 잘고있는 온 세상·올 의미하는 희랍어의 오이루메네에서 인용한 말로서 천세계교회가 연합하여 하나님 이 주신 사명올 수행하자는 운동이마. 3 • NAE ( N ~ tional As ~ocia tion of Evangelicals ) 는 전국복음동지협 회 로서 1942년에 미국 마초려주 쩨인 루이스에서 진보주의신학과 세속주의신 학사죠에 반대하는 사랍들이 모여서 처음으로 초직되었는데 1951 년에 흘랜드의 울쇼릎에 서 24 개 국에 서 온 대 표들이 모여 WEF (World Ev 하igelical Fellowship) 이라는 국제기쿠를 초직했다. 53 54 、 ' • • 口 한사상의 교육현장 SOUTH BAYI」OR 대학 이사장 박 준혼i 박사오}의 한시 간 “고맙습니다라는 우랴의 안삿말은 본래 곰이 왔읍니다 라는 민족신앙의 표현엽니다‘ ” - 박 박사는 이렌 평 볍한 생활용어의 풀이로 말문을 연다. <편집자> 우러 나라 사람들이 즐겨 쓰는 안삿말 [ 고맙습니 마 J 는 본래 [ 곰 이 왔읍니다 j에서 비롯되었마는것을 아는사람이 얼마냐될까. 이 제 우리 주변의 외국사람들까지도 우리에게 감사의 뭇을 표시할혜면 으례 히 어 색 한 액 센트로 「고마스미 마 J 할 혜 그 돗이 f AB ear has come 」이라고 풀이해 주는 코리 언이 있을까. 55 56 가든 그로브에 캠 퍼 스를 두고 있는 Sou th Baylor Universi.ty 의 이사장 박 준환박사는 「고밥습니 마 J 라는 말이 우리 민족의 고유신앙 윤 가리키고 있마면서 환안-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한민족의 건 국신화를 설명해 준다. 『우러나라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완벽한 경천인 〈천부경 > 과 한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 지런마 」라는 글자가 있읍니마. 물 론 <천부경 〉에 대한 연구나 [ 기런마 」라는 글자의 재평가가 아직 도 미흡한 것이 사살아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만으로도 한만족이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주고 있읍니마.』 최근에 와서 국내외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한사상은 결국 、홍익 인간을 근간으로 하는 것으로, 바로 이 홍익안간이야말로 우리 만족 의 열이요 , 따라서 이 대학의 교육이념이라고 박 준환박사는 선언한 다. 『오늘날 미국을 비롯하여 서구사회에서는 동양사상에 대하여 관섬 을 쏟고 있는데도 바로 동양사장의 뿌리가 되는 한사상 즉 홍익언간 사상에 대하여 나라안에서 바른 언식과 연구를 경원하는 경향이 짙 습니다.』 ‘ 대구 태생으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과를 졸업하고 1955년태평양 을 건너와 마 서부의 명문 클레어몬트와 MSC에서 경제학과 경영학 을 배운뒤 MSC에서 1962년 경영학천공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그 가 1977 년 이 대학을 설럽한 데는 뚜렷한 비천이 있었다. 『월남천쟁이 한창이던 때였어요. 교수들이 강의실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전쟁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지요. 학생들은 고민하는 거였어 요 . 왜 전쟁을 해 야만 하는가, 그러고 자기네 가 지지하지 않는 천7싱 에 냐가서 죽어 야만 하는가, 이 런 질문들이 쏟아졌읍니 다. 미 국 젊 은이들의 고민을 두고 교수언 나 자신도 고만하기 시작했읍니다. 어 렸을 혜부터 미국은 세계에서 최고마, 미국정부가 하는 일은 마 옳 마, 서구문명은 보편적이마라고 생각하던 냐에게 회의와 먼만이 움 트기 시작한 거예요. 고민끝에 결국 서쿠문명을 이끌고 가는 이원적 언 서구사상을 비판 ·극복해야 한다는 확신이 서더군요.』 박 박사는 서양사람들이 갖추지 뭇하고 있는 동양사람들의 사고의 틀 곧 비 시원성에서 대렵과 적자 생존이 아난 병존과 조화를발견하 게 되었고, 그 뿌려가 동양문화의 프론티어안 동이족 곧 우리의 한 사상이라는 것을 확언하게 되었마고 설명한다 . • • 그어l 따도면, 「내일 」이란 말은 한자로서 본래 우리말에는 없고, 생명은 영원히 자기 완성을 추무하는 하냐의 과정이요, 사람은 육체 와 정신을 따로 떼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하나의 천체로 되 어 있마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고 동양사상, 더 냐아가서는 한 사상은 바로 이 사상의 골자인 비시원성, 음양오행이라는 것을 알게된 것이마. 『 20세기는 서구문명의 한계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어요 . 그들의 이른 바 합리주의적 과학사상이 벽에 부딪친 셈이죠. 이제 돌아칼곳 은 대립 끝에 천쟁이라는 인류의 자기파멸이 아니라, 개인파 집단의 조화, 물질과 정신의 일체화 바로 그것입니마.』 1960년대와 7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Korean Community Cent er 와 남가주한인회를 통해 우리사회의 개척자 역할에 젊음을 바쳤던 박 박사는 이제 민족사상의 집대성, 한철학의 역수출에 남은 생애를 걸고 있다. 얀호상, 이항녕박사등 국내의 고고학, 역사학,언 어학, 철학분야의 저명학자들 50명을 모아 Baylor학회를설립하여 한사상연구에 박차를 가하는 한펀, 1988년에는 세계적언 학술대회 를 개최할 것을 구상하고 있다. 『결국 산다는 것은 뿌리를 찾는마는 뜻입니다. 우리 겨레가 오랜 57 58 보면 "....,~~ 1 !\'"'i""n쌓앤멀짜·*---짜알 '.~vi ‘ 셋,.,뺑 ·‘·‘채j;‘淡싫 :"7:팩“. ;‘:4:1f‘헛κ 한,;싸· ··:-빵’?갱 웬T앙‘협훨동 뺏‘ 의학박사· 한의학박사 이 정 규 률 닙, ~-;,‘- - ;τ .... ~ ..... ‘긴했熹혔했빼활據.繼’‘뿔~뺀혐%엇{ 흡"if"짧 •• 癡훌뿔~홈 훨!‘ 세월을 살아오면서 칼고 닦아온 사상과 지혜를 찾아서 온 언류에게 그러고 마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일이야 말로 가장 값진 삶의 보람이 아니겠어요? 』 박 준환박사는 가을을 맞이한 캠퍼스 정원의 냐무들을 내마 서 이렇게 말을 맺는마. ‘.널싸씨용 청 ·fH . 샤야· ‘ 패 & μ t k 펜획 - -、* … · 빡 훨 λ * ·¢ ‘ F. ‘- - ‘ i ir 셉핫짜획 - - - A “ ‘ ιι ‘‘ ‘--‘‘ ·귀국선물 약품 모두 준비딸어 있읍니다. lOiO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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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 TEL: (213) 734 - 3500. 734 - ss8o --씨 ,. • • 口 성공에 이르는 비걸 “인간관겨|를 소줄히 여져 ot 합니다” 인터뷰 : 법적 권익의 대변자 박 상협 L.A. 커미셔너 어느 분야에서든지 성공하는 사람에게는 남이 따르지 못할 만큼의 특장, 곧 비뱀한 힘이 있막 그것이 선견지명인 경우도 있고 강언한 투지력안 경우도 있막 그 가운데서도 한먼 맺은 언간판계를 꾸준히 견지하고 또 그것을 바탕삼아 확산해 나가는 언간에너지야 말로 가장 으뜸되는 특장이 아닐까.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고, 사람의 힘을 사 회판계에서 평가되는 까닭이라라. 최근 헐리웃 거리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스타 안 펄럽씨의 이름 이 새겨졌다. 안 필렵씨는 도산 안 창호선생의 장남. 헐리웃의 무수 한 헛트 영화에 둥장했던 「동양언의 얼굴 」 이다. 그러고 얀 펄럽씨 를 이야기 할 빼면 으례 생각되는 언물이 있다. 그가 곧 박 상협씨. 안 펄럽씨가 남긴 [ 유산 j 가운데 가장 손꼽히는 것이 폭짧은우정 인 것은 세상이 마 아는 일. 그 중에서도 박 상협씨와의 관계는 형제 지간의 정이라고들 한다. 이러한 두사람의 우정이 초석이 되어 마주도산사업회가 탄생하였 고 박 상협씨는 창립해부터 줄곧 위원장을 맡고 있다. 20세기초 흥 사단과 대한안국민회를 일으켜 빼앗긴 국권을 광복하자던 도산 얀창 호선생의 유지를 오늘날의 마주한인사회속에서 계승하자는 일종의 애 국 애족운동을 펴자는 것이 도산사업회의 취지이다. 박 상협씨는 미국민주당에서 알아주는 언물. 지난번 샌프란시스코 에서 열렸던 84년도 대통령지명대회혜는 VIP석에 앉을정도이고먼 데일민주당대통령후보와는 직통전화로 통한다. 먼데일뿐이 아니다. 59 1 ‘ 역대 민주당 거물급을 모르는사람이 없다. 률럭펠러 4세, 버지나아 주지사, -카아터천대통령, 케네디상원의원, 오닐하원의장, 브라운천 캘리포니아주지사 둥이 『하이 / 리처드』로 부르는 사이. 이들이 로 스엔젤레스에 오면 박써 부부의 초대를 받고 그 집에 드나든다. 화제는 언제냐 조-푸 쿄리아와 재미한국언사회. 한국에서의 마군철 수는 반대하지만 인권신장에 각멸한 판심을 갖고 로비활동을 렬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재미한언들의 갖가지 어려움을 룹는데 항상 분주하마. 로스엔젤레스시 법적권익위원회 (Legal Rights Commission) 의 위원 ( 커마셔너 ) 으로 한언들이 사업상 또는 개언생활에서 겪는 어 려움을 풀어주고 있막 물론 한언들만이 아니다. 좁게는 아시아계 미국시민, 크게는 천체시민의 법적권익을 대변하고 있다. 마국사회의 밑바닥에 켈려있는 언종차멸을 없애야 한다는 신념의 소유자. 만언이 법앞에서 펑둥하마는 그의 철학 /내지 사회의식은 아 마도 그가 고려대학교에 다니면서 법학을 익혔기 혜문얼까. 아니면 60년대초에 미국에 건너와 20여년의 미국생활에서 몸으로 겪었던 그의 체험 빼문일까. 그의 영광판 오·늘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한벤 맺은 언간관 계를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끝까지 이어가는 불퇴진의 신의-바로그 • • 것이 가져마준 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박 상협씨의 의지는 그의 비지네스에서도 뚜렷하다. 67년 에 오픈한 [ 박 보석상 J 을 같은 자리에서 지금껏 지키고 있다. 으똥가는 바지네스 거리에 해보지도 않던 보석상을 차렸을배 주 위에서는 몇달도 뭇갈 것이라고 걱정들을 했다. 그런데 초창기의 어 려움을 거뜬히 이겨내고 지금은 웨스턴 프라자에 「화신보석 」 까지 차리고 있다. 한먼 자리를 잡으면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한마는 것이 박씨의 인생천략이다. 이렇게 해서 박씨가 맺은 모든 인간관계는 무 성한 가지를 오늘처럼 뻗게된 것이리라. (213)387-2511 대표 ; 신 현호 LOS ANGELES, CA 90006 2551 W. OLYMIPIC BLVD. #101 EXPRESS ANSWERING CO. 61 62 더 자동차 구입상식 “서비스를 보장받는 호l사에서 차플 사야 합니다” -미트웨이포드 김 윤성 부사장에게 듣는다- 미국에서는 차가 발이막 그래서 차가 시원찮으면 항상 불안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차가 두통거리가 된막 새차나 헌차냐 매안티년스 (maintenance) 가 문제다. 그래서 차를 살 혜에는 산 곳에서의 서 비스를 할 수 있는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서비스가 없는데서 차를사 게되연 차의 생명 ( 유지 ) 을 보장받지 뭇하기 마련이다. 이점이 차 를 사는데 있어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는 차를 개안으로부터 사는 경우도 많고수러 시설을 하나도 갖추고 있지 않은 중간업자로부터 사는 경우도 많막 한인사회에는 이곳 저곳에 천화한대 두고사무실만 차려놓은 중간업 체가 3백군데나된다. 이들은도매회사에서 차를고객에게 「몸으로」 알선해 준마는 [ 서비스 j를 강조하지만 진짜 서비스 곧 수러시설이 없다. 그러 연 결과적으로 차를 사는 곳이 마르고 수리를 맡겨 야 할 곳이 다르게 된다. 이혜 누가 차를 책임지는가가 문제가 펀막 그 뿐이 아니다. 차의 내용을 모르고 차를 파는 경우가 많다. 대개 차를 사는 고객은 차에 대해 잘 모르기 혜문에 r 믿을만한 상담」 을 받아야 하는데, 중간업자에게 사는 청우는 마치 차를 찰 모르는사람 으로부터 「 업에 발란 서비스 J 만을 받을 수 밖에 없마. 이렌 일도 생기게 된다. 얼마천 한언타운에 불마스렌 일이 있었다. 차를 사는 사람이 차 값을 다운( 선불) 한 뒤 오라는 시간에 산 차를 찾으러 갔더나 그 중간업체가 뭄을 닫고 만 것이마. 돈은 주었는데 차를 쿠하지 뭇해서 아우성이 났지만 아무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사 • • 람이 없어서 돈만 날리고 만 것이다. 중간업자가 돈만 챙기고 살아 져 사기를 당한 것- 누구의 잘뭇일까. 그래서 차를 살 빼는 제대로 된 자동차 딜러를 찾아가야 하고, 고 객의 능력과 펄요에 가장 알맞게 차의 선택을 도와주고 산 뒤의 수 리까지 책임져 주는 그런 회사를 찾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고 70 년대중반의 세계적언 오일-쇼크(Oil Shock) 직후에 는 개스가 적게 드는 소형 외국산이 날개가 윷혔다. 그런데 80년대 에 들어와서는 미국 자동차 생산업계에서도 값싸고 개스가 덜 드는 소형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외국산은 부속품 값이 엄청나게 비 싼데 비해서 미국산은 부속품 값도 덜 비싸다. 그 결과 최근에는 마 제차의 판매고가높이 뛰고 있막 역시 경제적언데마튼튼하마는 것 이 정평이다. 한인 가운데서는 물론 남가주지역 천체 자동차 딜러중 룹세일즈맨 은 역시 김 윤성씨. 23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이다. 현재 미 드웨이 포드( midway Ford) 회사의 부사장언 그는 60 년대 초부터 줄곧 자동차딜러로 일판해 왔다. 오늘날 로스엔젤레스의 2개 포드 딜러회사에서 매월 총 350대를 팔아 2 백 50만불어치를 판매하는 포드 자동차회사의 중역이 되기까지 아이과 에스코바 포드둥 회사의 사장을 지냈다. 63 64 그의 말을 들어보자. I「우리 회사에서는 차를 팔 뿐 아니라 자체정비 공장에서 정기적 언 체크를 해 주며, 고장이 났을혜에는 책임있게 고쳐주지요. 고객 을 만족시켜 주어야 사업이 번영할 수 있잖아요? 평생 고객으로 만 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나다. 그러고 trade in 할 혜에는 그동안 메인티년스를 제대로 해놓았기 혜문에 제 값을 줍니다. 그러고 회사 와 연결된 은행에서 론 (융자) 을 해 주묘로 싼 이자를 알선합니다. 크레 닷이 없는 분에게도 크레 닷을 쌓을 수 있도록 돕고요. 』 우선 경험이 많고 천문적언 지식을 갖춘 이를 찾아가면 얻는 것도 많마. 그러고 제대로 펀 달러회사의 고객이 되는 경우에 기대할 수 있는 서비스도 가지가지다. 좀 더 들어보자. 『고객이 돈을 내고 차를 살 혜에는 응분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지요- 계약서에 적혀 있는 모든 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권리,그것 이 이행되지 않을 해에는 이행을 요구할 권리, 약속된 서비스를 받 을 권리, 자동차가 제조과정에서 잘못되어 탈이 났을 빼에는 새것으 로 바꿔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고 정직하고 책임있는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등 고객의 권리는 한 두가지가 아니죠. 이런 권리를 당 당히 주장할 대 상 ( 회 사 ) 이 확실해 야 해 요. 잠시 있 다가 없어 지 는 회사냐 중간소개업체가 아니라 천통이 있고 명성과 신용이 있는회사 라야만 할 것 아니겠어요? 』 김씨에 의하면 마른 커뮤니티에는 별로 없는 중간소개업자냐 회사 가 우리 한언사회에는 너무 많은데서 사고가 생긴마는 것. 『물론 인정상 아는사람을 찾거나 언어에 불편을느껴 중간업자를 찾고 있지만 차라는 하냐의 재산을 사는 행위가 되고 그러고 웬만한 자동차딜러에는 한인딜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 심한 예로 는 36개월짜리 차값을 48개월 무는 사람도 있고 제혜에 꼬박꼬박 돈을 물고도 끝에가서 보나 크레닷을 망친 사람도 있고, 딱한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난 것 같더군요. 이런 일이 속히 정리가 되어야 할 것 같군요.』 형편이 안되면 믿을 수 있는 곳에서 헌차를 사도 좋다고 김씨는 말 한다. 『차를 문리하게 살 필요는 없어요. 중고차도 잘 정비된 것이면몇 해동안 잘 쓸 수 있거든요. 차는 메인티년스가 생명입니다. 제 뺀에 • 65 • 오임 체언지 · 륜엽해 주면 되는 거예요.』 、 허지너l스하는 사람에게는 렌트카도 권장할 만 하마는 것 『사는 것보마는 약간 비싼 펀이지만 차수리등을 스스폰 책임잔깐 앉아서 좋-고, 돈을 많이 선불안해서 좋고, 면세혜택도 받을 T X」L 채스비등을 회사에서 상환받을 수 있으면 더욱 좋지요 』- z l 유서씨는 1955년 2월에 도미. 롱비취 가주주럽대학교에서 회 계갈냥짚공, 62 년에 졸업한 뒤 계리사를 거쳐 자동차엽계에 투신해 왔다. 남가주 한인재 단 이사장도 역 임 . ----~」--」--」--」.,6/IT6/IT611T611T~~~~ - - - PIANO: KRAKAUER, KIMBALL, BALDWIN EVERETT, YOUNG Cl-fANG, KAWAI, YAMAHA ORGAN: ALLEN, CONN, HAMMOND mo•노 · 올랜 각종 현악기 • 목핀익키 • 금핀탁키 진를·충고풀·장적플·익보매매 조률 • 수리 • 전처|개조 • 훌 .산찌 ro 7ε - -〉ν γ. 、/ /.、/ AA w. WASHING\Ot'l ~ ‘~· “ ~ ti., -를 를:- ............. -- 0개인 이~짐 C> 카게 ·사무실 ·공창 G피아노·냉장고 。장거리·뀌국이삿점 hTJ #케 ~ 돋케 【==콰 I판】 ~.J 938 s. 길RAMERCY PL, LOS ANGELES --삶싫Ur~녕j슴작‘~과~~);.짙;~쏘잉 口 l 한 66 [ ] 밝은 동포사회를 위한 제언 “서로 믿고 도우며 살o~갑시다” -동방식품 윤 재환 사장에게 듣는다- 『동포들이 제나라의 것은 얄보면서 남의 것은 무조건 떠 받드는 버릇부터 고쳐 냐가야 해요. 라면의 경우만 해도 제나라에서는 안팔 리는 「삿뽀로 라면 J 이 이곳 한인사회에서는 판을 칩니다. 품질로나 맛으로 볼 혜 우리의 「 삼양 라면 J 이 훨씬 나은데도 말입니마. 쌀도 같은 경우 입니다. 「아리랑 J 쌀이 「국보 J 보마 낫지요. 그런데 팔 시를 받고 있거든요. 꽉 날카로운 비판이막 사실이 그렇마면 [ 큰 일 J 이 아닐 수 없마. 17 년동안 고국의 언론계에서 활동하던 기자출신의 마음에는 얀타까 움이 넘 쳐 흐른다. 이 유인즉 간단하다. 우선 -고객 들이 상품을 알아 야 한마는 것. 〈경향신문〉 〈신아일보〉의 베테랑기자이던 윤 재환씨가 오늘은 고기공급업체 언 「동방식품주식회사 J 를 차라고 안심칼비 , 챔버거삽 용 패티 둥을 팔고 있지만, 동포들에 대한 「가슴뛰는 애정 J 은 천보 다 솟쿠치는 듯. 『미국에 온지 5 년, 10년이 되었마는 이들도 고기종류를 찰몰라 요. 둥심이나 꼬리가 최고인줄 알고 있거든요. 그러기에 눈감고 아 웅하는 식의 「셰일 J 이 벌어지는 겁니다. 뿐안가요? 코가 좀 높은 사람들에게는 [예, 예 j하며 불평하나 없이 사주면서동족끼리는 값 도 좋고 품질이 뒤어냐는데도 거들떠 보지 않아요. 참 딱합니다. J 윤 재환사창에 따르면, 미국은 소비자가 완이 되는 나라임에는 틀 • 럽이 없으나 왕도 좀 알아야 왕포릇 할 것이 아니 냐는 것이다. 그런데 • 덮어놓고 외국사람이 하는 것은 밀어주고 같은 동포가 하는 것은 불 신한마면 왕구실을 하기가 어 렵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날 수 밖에 없마는 것이다. 『한국식품점에 가 보세요. 일제식품치고 없는 것이 없어요. 그런 데 일본마켓에 가면 한국제식품은 보이지 않습니다. 두부, 생선, 채 소 등의 식품도매회사를 가보면 우리 한국인의 덕분에 그들만 재미 보고 있마는 것을 통감하게 핍니다. 그런데 우리꺼리는 파리만 날리 고있고어쩌마사준마는것이 부도수표만잔뜩그어놓고가서 결국 은 도산하는 식품회사가 생기기 마련이지요. 』 참i로 기막힌 이야기다. 어찌 누가 선뜻 믿고 나서겠는가? 그런 테 그것이 사실이니 더욱 안타까울 뿐이막 도기공급업계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품질δl 훨씬 낫고 값 도 훨씬 낮은데도 동포끼리 사주는데 언색하마는 것. 『한번은 아는 사람의 소개로 어느 챔버거삽을 달려 갔지요. 처음 엔 좀 기 마리라 해서 2시간40분을 줄곧 기마렸읍니다. 그랬더니 하 는 말이 「한국사람과는 거래하고 싶지 않마」고 잘라 말하더군요‘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그러나 국 참고 돌아섰읍니막 동족이기에 그저 웃고 돌아왔지요. 』 챔버거삽을 경영하는 한국인들이 많다. 이만을 갓온 까닭에 영어 도 서툴고 또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업종이기에 「우선 밥은 먹고 산 67 68 마 J 는 생 각으로 챔버거삽을 사서 부부가 함께 띈마. 천 방송인 위 진록씨의 <하이 / 마스터 위 > ( 개척자사 발행 ) 라는 책도 있지만 얼마간 열심히 뛰면 고생의 엣가로 한 밑천을 잡을 수도 있다. 남가 주만도 1천여군데의 챔버거삽을한국언이 경영하고있다. 그렌데이 챔버거삽에 고기를 대는 고가공급엽자는 유태인이 아니면 희랍사람 들이라는 것 . 아예 백 인 양반들( ?) 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업종이다. 그 래서 말도 서로 통하고 값도 싸고 품질도 좋은 고기를 대주는 데도 f 불신감 J 때 문에 거 래 선 트가 가 하늘의 별 따기 . 『서로 도움시마. 뛰어도 그들보마 더 뛰고 알아도 그들보마 더 아는데, 남의 땅에 와 외롭게 살면서 서로 돕지 뭇할 것이 무엇이겠 어 요. 교회 에 연보를 해 도, 코리 아타운에 나아가 물건하나를 사도 결국 [ 우리 주머니 」 에 들어칼테니 말입니다.』 담담한 목소리지만 가슴에 사무치는 이야기마. 「 마른 약소 민족 보마 더 잘 살기 위해 서로 믿고서로 도와야한마 j는게 윤 재환씨 의 철학이마. 언론계 출신야라서 정보에 빠르마, 그러고 민족의식이 투철하다. 나이도 지긋해서 이해심도 많다는게 윤씨에 대한 주위의 정평이다. 그러고 무엇보마 정직하마고들 한마. 『참 웃기는 일도 있어요. 동보상사라는 이름을 건 회사에서 선물 용 고기를 한국얀에서 직접 배포해 준다고 떼든 적이 있어요. 그러 마 도망했지요. 조달청의 주관하에 국제관광공사둥의 국영기업체에 서 연간고기수입을 일괄 관할하는 사업언데 민간언이 껄 수 없지요. 이 런 무모한 「모험 J 들이 불신을 낳는 것 아니 겠 어 요. 』 윤씨가 경영하는 「동방식품 j 에서는 귀국선물용 고기- 얀섬고기 와 갈비등-를 특수진공포장방법을 사용해서 완벽하게 냉동시켜 고 객이 직접 들고 갈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고 가정주부들을 위하여 갖가지 고기-불고기, 갈비, 등심등 -를 시중 일반마켓보다 30 %싸게 도매가격으로 콸고 있다. 소탈하고 부지런해 보이는 윤 재환씨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이렇게 말을 맺는다. 『기자생활때처럼 10년쯤 이라 뛰고 저리 뛰면 뭔가 잡히지 않겠 는가 봅니다. 그래서 주판을링기지 않고 챔버거 경영업체를 도와줍 니마. 챔버거 고기 공급을 7년쯤 하마보니 도가 트이던군요. 챔버 거장사 한번 해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보내십시요. 온갖 정보를 ~ • 69 • 아 주겠고 좋은 가게도 무료 알선해 줄테니까 말입니다. 어디 함께 뛰어 보자고 말해 주십시요. 』 윤 재환씨의 연락천화는 (213 ) 731 - 6361 이다. USA-I 납 ~Cl찮 BODY SHOP 선택 을 잘하시 는 것 이 여러분의 차를 보호하는 걸업니다. Z }∞ 」 - α 〉 〉〉 ‘∼ n 口 최신형 Frame machine설치 口 무료견적 • 토잉서비스 口 고굽차량 책입수리 口 모든 보험관계 문의환영 ARTESIA BL VO 9’ FWY 4 ~ 29 W. COMMONWEAL TH, FULLERTON, CA 92633 ! 흘뀔복~ ---인컴트센스 a갑M다. 서l법을 최대한 활용하면 세금이 유리해 집니다. 특히 근로자 • 저소득자 • 가족부 양자 • 셋 집 • 아파트입 주자 • 소 자본엽 체 • 하청 엽 자 • 사업 에 적 자를 보신 분들을 도와드럽니다. 장학금이 필요한 분 . 81 년도에 이띤 또는 이사온분 (213)389-6391 야f I 430 S. WESTERN AVE. #201 LOS ANGELES 70 ! J 과장광고뜰 고발한다‘ “이 세상어|는 투자보험이밥게 없읍니다” -메트로폴리탄 보험상담인 유 안희씨 - 『항간에는 「 투자보험 」이라고 선전을 해 대는 사람이 있는데 , 보 험은 보험이지 투자는 될수 없읍니마. 투자라는 개념에는 두가지 철 대불가결의 천제가 있지요. 우선 위험부담을 투자하는 측이 있마는것 그러고 그 행위가 이윤을 겨누는 것이죠. 본래 misleading하는 광 고는 법에 따라 제재를 받기 마련입 니 다.』 따끔한 이 야기 임 에 틀림 없다. 투자를 하려 면 증권을 사든지 부동 산을 사야 할 일이지 보험을 살 수는 없마는 논리다. 그런데 항간에 는 대문짝만한 광고를 통해서 「투자보험 」을 내세우는 사람, 회사가 있다. 말도 되지 않는마는 것이다. 「 핑도-먹고 알도 먹고 J - 말하 자면 보험으로 손해 심지어는 생명까지 보상받고 또 돋도 벌 수 있다 는 이런 종류의 사업선전이야말로 한인사회를 현혹시키고 종국에는 약육강식의 원칙 , 불신풍조의 커뮤니터를 만들어 낸다. 우러나라의 명문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을 배워서 한국전력에 젊음 을 바치 마 이민온 유 얀희씨는 보험이 투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 보험은 이윤을 목표로 하는 경제행위가 아닙니다. 예를들 지요. 자동차보험이나 의료보험 또는 생명보험에 이윤을 얻기 위해 서 가입하지는 않지요. 자동차 사고를 당하거냐 도난을 당했을 때, 또는 아프거나 죽었을 혜를 대비해서 보험을 드는 거예요. 자동차를 고치기 위해, 마친 몸을 고치고 생활비를 보장받기 위해, 아니면 유 가족의 생계를 위해 보험을 드는 게 아닙니까? 그러고 투자의 경우 • '- -- • 처럼 위험부담을 가입자가 지는 것은 아니지요. 투기하는 해처럼 보 험료를 날리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그런 경우 보험회사가 책임을 져 주지요. 』 보험의 근본개념을 「보험회사가 가입자들이 낸 보험금을 판리하 고 키워 냐눠주는 상부상조 J 라고 유 얀희씨는 말한다. 보험 중 이 른바 「투자 」와 엇 비 슷한 것 이 있 마면 「 저 축성 생 명 보 험 」이란게 있마는 것이마. 일정기한 동안 불임하면 쌓여서 그것을 찾아 쓰거냐 그것을 담보로 융자를 할 수 있지만 그 경우에도 수수 료 ( 첫해에 약 0.9 %가량 ) 를 제외한 불입금을 찾게 된다. 그러고 흔히들 「교육보험 」 「퇴직보험 J 이라고들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같 은 계산방법에 따라 교육자금을 마련하는데 쓰이기도 하고 퇴직자금 을 마련하는데 쓰일 수도 있다. 경제학을 천공해서인지 경제용어의 개념에 철저한 유 안희씨는 보 험대리인의 역할까지 마시 정의해 준다. 『흔히 세간에서는 보험쟁이라고들 합니마만, 잘뭇된 표현이예요. 하기야 「보험을하나 팔아주섭시요j하고 찾아마나는사람들이 많 71 72 으나까 그렬테죠. 그러나 보험대라인은 보험가입자의 펄요와 조건에 가장 알맞게 디 자인하고 프로그래 밍하는 전문적 언 상담언 입 니 다.』 확실허 우리 커뮤니터에는 보험을 [ 파는 J 사람들이 많마. 줄잡아 2fi0 명 가량이나 된다. 그러나 섣제로 뛰는 사람, 보험을 평생의 사 업으로 여지고 천문가로 헌신하는 사람은 100명선이 넘지 않는다. 쉽게 시 작하고, 또 쉽 게 떠 냐는 곳이 곧 보험 엽 계 다. 그 까닭도 간단하다. 미국내 1,800개 가량의 보험회사가 있다.그 러고 그러 힘들지 않게 보험언 자격시험을 패스한다. 그래서 주위에 아는 친척, 친우, 동창들에게 [ 한벤 봐 달라 j해서 얼마동얀 돌아 마나 마가 아무말 없 이 사라지 는 이 들이 많다. 「 쉽 게 들어 가면 쉽 게 빠져 나온마 J 는 격 언이 보험업계처 럼 적중하는 곳도 드물다. 그래서 보험 인-으로 베 테 랑급에 속하는 수는 손으로 꼽을 정 도. 그런데 보험언은 우선 지식을 갖춰야 한다. 그러고 성실하여야 한 다. 많이 알아서 가입자의 요쿠와 형펀에 따라 각양각색의 보험혜택 (Policy)가운데서 가장 알맞게 묶어서 소개하여야 하고, 또 평생 직으로 삼고 오랫동얀 버려야 신임이 두터워진다. 그래서 유 안희씨 는 매주 화요일이면 보험천문대학을 마녀서 보마 많은 지식을 습득 하고 있마는 것이다. 『얼마천 어느 의사 한 분올 찾아갔더니, 「 어 다 보험하는 사람을 믿을 수가 있읍디까? 자동차 사고가 나서 도와 달라고 했더냐 딴천을 피우던군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보험서류뭉치 를 어단가에 접어던지고 말았지요 j하기에 한먼 찾아서 보여달라고 했지요.』 결국 그 의사가 서류를 찾아낸 것을 가지고 열심히 도와 주었더니 「이제부터는 내 보험일체를 마 맡아 달라 J 고 하더라고 유 안희씨는 말한다. 그래서 그 의사의 자동차보험은 물론, 집보험,생명보험까지 맡게 되었노라고 했다. 유 얀희씨가 일하고 있는 메트로 폴리탄(Metropolitan) 보험회사 는 1868년에 설립됐고 총 4,700만의 가업자들로 부터 작년 12월현 재 4,509 억불의 보험계약고를 가진 내국 굴지의 회사. 이 회사의 소 유재 산은 자그마치 600 억 불이 넘 는다. 『고객 을 방문하여 , 고객 의 목표 ( 필요 ) 와 이 익 에 가장 합당한것 을 선별해 주고 있다』고 말하는 유 얀희씨는 『보험이야말로 애정과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얀정된 이민생활의 지표』 라고 힘주어 말한다. 유 얀희씨의 연락천화는 (213) 380-3916 또는 834-5943 . • • ·특징 1 , 품질보증 2 1 신용거래 3; 염가봉사 ↓4、)다리지 않는 각종 한약보재구비 i;;灣뿔훨룰 백보원 건채l촌활聯협;; ;; 솥r첼--불풀짧!E1 ·초릅반·연구반 부싫 미용실서비스안내 ·머리 짜르든 t1j 벗기든 볍 Hlow drv ·땀우머리 6가지 ·단말머리 107~지 • 긴머리 기본자세 4 가지 ‘함아버지 함머니 (60세이상) 이발 무료봉사 염 색 : 5 불 파마 : 10불 임 바익1 이 밤 3 붐 95센트. 파마 : 15불95센트 (2 I 3) 389-2869 73 74 ,-------- •Mutual Funds •Stocks & Bonds •Limited Partnerships /Tax Shelters •IRAS, KEOGHS, Pension Funds Investment YOUNG MIN KIM Investment Executive (714) 738-5483 Res (213) 430-7138 905 S. Euclid Ave. Suite 111 Fullerton, CA 92632 ι략고활ξT.oJ르T납f Al.;ξI -‘ ‘ ’‘’ I ι • 멘""'L .: 』 - ‘ - --- . . L , ’ • f! 4 ~ ; ,-’ � -- , - - -- ’ “ · ’ : . . . . . . .. . __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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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bring a pattern with you, once again To transplant it onto the barren patch, for the seedless Motherland Which has been long hibernated by someone 닙 ; I \ S니 / ‘. ~ .~ . Oh, dear the Korean grandparents! Please bring a liberality with you, once more To instill the doddered, for the overshadowed Motherland Which has been long defunct by someone / If so, your visit" to the beloved homeland,-for the very unification The North and South Shall be sufficiently illuminated Once again, the current Korean peninsulars have asked for us, Korean-American In the locomotive world (The very behest, my Motherland wishes to haψe it established sooner) '/、lu ’ l”’‘, , ( ‘u1n· 11 /(r /i1 ‘(’s f 11 Hm1‘’lulu. Ha1r r111 ,. • • OPINION LET’S ELIMINATE THE SMOLDERING COAL OF DISCORD By Chang Soo Kim Of all the difficult things encountered in life, what is particularly difficult is to find an ideal partner with whom one can overcome many hurdles to reach the goal of a successful marriage and a happy and rewarding life. For our sons and daughters who grew up in America, marrage involves a variety of delicate pro blems arisin용 from special cultural and social settings, which we [the first genera tion] have not experienced. Thus, it is not easy to marry the children off in accor dance with p혜rental wishes. Let us fir'st look at the essence of marriage itself. Marriage is not an idea or concept; it is, rather, a reality. It is a process in which the intellectual and emo tional needs and desires of man and woman are expressed and carried out. It is a continuity of life based on mutual help. To lead this very practical individual life, a mutual relationship which imposes no unreasonable risk is a must. Exchanges of the most intimate emotions possible in the relations between man and woman must be carried out physically, psychologically, and above all, naturally. A noble [platonic] love or momentary incidental arousal of sexual desire might make it possible for a person to go beyond national boundaries in choosing his or her spouse. But marriage is not a momentary game or drama. We know for un undeniable fact that a marriage cannot succeed simply on the basis of a philosophic notion or a kind of sentimentalism derived from literature because it is an actual process whereby a man and a woman go on interpreting the meaning of life and solving its problems through observations made while the couple pursues each other’s emotions and ideals. Thus, married life is a process of wordly realism - - a long drawn-out process through which one grows and matures, forming a system of values including moral and religious convictions. It is my belief that one way to increase the possibility of a happy marriage is to eliminate or minimize the factors that cause discord or conflicts. Let us look at the obstructive elements which international and interracial mardages may bring to the all-important married lives of our children. The first on the list would be the difficulty involved in dealing with delicate and subtle feelings in a natural manner. The difference in language and in the way of thinking creates a communication problem in conveying the emotions and feelings that are absolutely important to one’s self. It is all too easy to imagine the severity of loneliness and alientation if one’s spouse, a partner who shares all things from the afar, does not accept them with an open mind. The second category of obstacles would be the different customs, life styles and eating habits. Habits and life styles formed over a long 77 period of time do not change so readily as one would like to think they do although, in theory, they may seem simple enough to overcome. A marriage cannot last if one has to hold back one’s own feelings simply for the love of one’s spouse, or if one has to suppress one’s impulses for the sole purpose of satisfying the other per son’s comfort and tastes. It is not easy to adapt to a life style that causes one to feel tension and uneasiness, which at times bring about a feeling of dislike or even hatred. While these difficulties can be avoided if rationally examined, it may be too late by the time one begins to feel disappointed by them. Finally, we have often heard about the bitter experience of married couples who unavoidably go through conflicting personal relationships and the attendant sense of alienation. This is a familiar dilemma we freq~ently see around us. The second generation Asians are often called “ bananas” - yellow on the sur face but white inside. The analogy obviously refers to the second generation Asians whose yellow skin contains in it the American way of thinking. Many second generation Asians seem to think that they can adapt themselves to the hierarchical society dominated by white Americans through interracial mar riages, especially by marrying white Americans. But the banana analogy is a good reflection of a reality that is cold and cruel. It seems more reasonable to improve economic and social conditions artd regain the basic rights on the basis of the com- 78 monality of race. The “ Banana” generation is said to be moving into a “ Bee” generation, which refers to a minority group who flap their wings and shoot the darts of their stingers, if necessary, to let the world know of their existence. America is a socie ty with many good things, but it is also a society with many dilemmas. The rich culture of the Korean race, the virtue of humility, the beautiful traditions and good customs, and the stable family system - are not important legacies of the Korean heritage absolutely necessaη for our life in American? The writer lives in Los Angeles, California. 몸매에 따라 여러분의 멋과랩시를 본격적인 정해선씨가 직접 경영하는 내드러는 더자이너 점 얄 1 근 。 훈f (213) 383-65681384-3687 3753 Wilshire Boulevard, Los Angeles, California. 90010 ,. ------------------------------------------------------------ • ----------------------------------------------------------------- 장원갈비 · 삼계당은 념리 소문나 있읍니다 . (2 I 3 ). 737-0809 (한뚝종할의료원 건너편 } 3545 W. OLYMPIC BLVD. L .A . CA. --------------- 노스워|스턴뮤추얼보험호|시의 카장 큰 시영은 보헐으l 이미지오} 미국에 시는 한인들으l 삶 속어| 즈1실흔 l LH일올 창조하는 여러분의 호|시입니디. 폈저축성 생명보험·단기보험 자녀 교육보험 ·세 금공제보험 건강보험 ·퇴직보험 ·장례비보험 (흠1 3) 938-2711 4282 WIL~HIRE BL. L.A .. 79 • @ 지난호와 이변호 사o ]가 너무 진었다 . 4개월이 지난 셈이다 .재정 의 어려움 때운이었다 . 그렇다고 쉴 수도 없다- 만족의 자유와 만줌의 승 리들 위한 선한 싸움을 이어가야 한 다는 것이 펀집자들의 결심이다. 독 자들의 성원을 거듭 빌연서 천진을 다짐한다 . j 편 접 }딛-0 코--- 고L 80 제 22호) 뿌리(통권 스。 가 노 호 바「 0-L 편집 인 논섣주간 1--l- 0 섭 미 식 남 렬 봉 ;;z.. -「 흐 n 완 구독·주소변경·광고접수 JOURNAL De Groot Pb.ce CA 90701 (213) 926 - 5656. 494 - 2266 @ 미국 : 1 년분 20불 , 2년분 38불 @ 차나다 ; 1년분 24불, 2년분 40불 • @ 한국 • 일본 · 유럽 · 남마 : 1년분 30불, 2 년분 50불 © 5 년분 100불 @ 명 예 영 군쿠독 200 불 @이번호에서는 70년대에 나라에서 생겨난 만중신학을 아적 상황과 판련시커 평가해 마. 지난 7월 만중신학의 기수 남동교수의 서거. 그러고 최근 마 교황청의 남미 해방신학에 대한 잇달은 비판을 계가로, 만중해방을 정치경제적 쿠조와 역사적 맥락에 서 제창하고 있는 만중신학내지 해 방신학이 어 떠 한 아시 아적 상황속에 서 생동하고 있으며. 그러고 무엇 을 동력으로 삼아 l 또 어떤시각 내 지는 판점에서 추진하고 있는가를 몇펀의 논문과 판찰을 통해서 .~살펴 본 것이마. @그리고 고 서 남동교수와 함 께 격동과 시련의 한국적 현장속에 서 사색과 행동을 같이 하면서 만 중신학의 주역을 맡았던 신학자 운 동환박사와 사회 학자 한 판상박사 의 글을 통해서 서교수가 남긴 유 엽과 공헌. 그러고 그의 삶의 주변 을 살펴봄으로써 신교선교 1백주 년 , 카톨릭선교 2백주년을 마지한 한국기독교의 새로운 모색과 방향 을점검해 본것이마. @ 마르코스 이후의 펄럽핀,유신 체제이후의 한국이 나아갈 걸을 천 망하는데 있어서 놓칠 수 없는 자 각된 만중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 기를 바란닥 . 참으로 만중의 쌓안 한과 역사의 주체로서의 강열한희 망이 현재적안 차원에서 정치사회 적 힘으로 융해 • 승화되어가는 과 정을 바라면서 아시아적 빈곤과 쿠 조악을 말끔히 .씻 어 나가는데 재 미 한인들의 삶이 이바지되기를 갈망 러 시 ‘ 았 서 우 아 보 로 까 -「 요 유 은 강 충 태 선 검 강 검 양 오 、이 정 이 김 편집주간 편집위원 발행 안 부사장 1HE KOREAN ROOTS Box 105 3171 W. Olympic Blvd. Los Angeles, CA 90006 시 를 17208 Cerritos ’ Al l:::::t 편 큰 -‘」- 드三 --, 구 -- l I l ------I l l • -------------- ---------- -------------- --------- BUSINESS REPLY MAIL FIRST CLASS PERMIT NO. 61850 LOS ANGELES CA니F. POSTAGE WILL BE PAID BY THE KOR닮N ROOTS BOX 105, 3171 W. Olympic Blvd. Los Angeles, CA. 90006 ~=.-~~ 1혀. δ- 1Cl09 ..... -‘ ‘ Zl$ ._ _ . i ‘ -----~-- τ--- ----------l l l • -------------- -------------- ”””””” ------------- B.USINESS REPLY MA IL FIRST CLASS PERMIT NO. 61850 LOS ANGELES, CALIF. p。STAGE WILL BE PAID BY THE KOR닮N ROOTS BOX 105, 3171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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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Ppuri = The Korean roots = 뿌리, no. 22 (1984 [May/June]). Bimonthly.
Asset Metadata
Core Title
Ppuri = The Korean roots, no. 22 (1984 May/June)
Alternative Title
뿌리 (1984년 월5/6) (
alternate
)
Publisher
Kaechokchasa
(original),
Los Angeles, California
(original),
開拓者社
(original)
Tag
OAI-PMH Harvest
Format
88 p.: ill.
(format)
Language
English
,
Korean
Permanent Link (DOI)
https://doi.org/10.25549/kperiodicals-c43-52126
Unique identifier
UC11902912
Identifier
kper-ppuri_1984_022.pdf (filename),AP95.K6 P68 no. 22 (identifying number),kperiodicals-c43-52126 (legacy record id)
Legacy Identifier
kper-ppuri_1984_022.pdf
Dmrecord
52126
Format
88 p.: ill. (format)
Rights
Kaechokchasa; Kaechʻŏkchasa; 開拓者社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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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rean Periodicals
(collection),
Ppuri (뿌리), 1983-1984
(subcollection),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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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y Name
East Asian Library,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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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herited Values
Title
Ppuri (뿌리), 1983-1984
Description
The Korean Periodicals collection contains runs and individual issues of Korean-language serials -- newspapers and journals.
Please note the quality of many of the earlier 20th-century titles is poor due to the source (microfilm) from which they were digitized.